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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속 개미 행렬이 그냥 먹이를 옮기는 줄 알았다면, 그 아래 땅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겁니다. 저도 산길에서 개미 행렬을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제가 본 건 어마어마한 전쟁의 일부였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땅속에서는 왕국의 지배권을 둘러싼 침략과 기생, 그리고 놀라울 만큼 정교한 협력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개미 사진
    개미 사진

    땅속 왕국의 구조, 생각보다 훨씬 정교합니다

    곰개미 왕국의 기본 구조를 처음 제대로 이해했을 때, 저는 꽤 오래 멍했습니다. 여왕개미 한 마리가 평생 수십만 개의 알을 낳고, 일개미들은 각자 역할을 나눠 그 알과 애벌레를 돌봅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영양교환(trophallaxis)이라는 행동입니다. 영양교환이란 개미가 여분의 위에 영양분을 농축해 저장했다가 동료 개미의 입으로 직접 나눠주는 행위로, 쉽게 말해 개미들이 서로 밥을 먹여주는 방식입니다.

    애벌레 돌봄도 단순한 수준이 아닙니다. 보모 역할을 맡은 일개미들은 온도와 습도에 따라 애벌레를 굴 속 여러 방으로 수시로 옮기고, 항균성 분비물을 온몸에 발라 세균 번식을 막습니다. 일반적으로 곤충은 본능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장면을 보고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습도가 높아지면 번데기 껍질을 직접 뜯어내 용 상태로 돌보는 장면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애기똥풀과 개미의 관계도 인상적입니다. 식물이 씨앗에 엘라이오솜(elaiosome)을 붙여 개미를 유혹하는데, 엘라이오솜이란 씨앗 표면에 붙은 지방·단백질·비타민 덩어리로 개미에게는 고영양 먹이입니다. 개미는 이 씨앗을 굴로 가져가고, 먹고 버린 씨앗은 이듬해 개미굴 주변에서 싹을 틔웁니다. 이처럼 개미와 식물이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를 편리공생(commensalism) 또는 상리공생(mutualism)이라 구분하는데, 이 경우는 양쪽 모두 이득을 얻는 상리공생에 해당합니다.

    곰개미 왕국의 핵심 구성 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여왕은 산란에만 집중하고,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다
    • 일개미는 사냥, 보육, 경비 등 역할을 분담한다
    • 영양교환을 통해 왕국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 번데기를 하루에도 수차례 이동시켜 최적 환경을 유지한다

    침략과 기생, 자연은 착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 내용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사무라이개미 여왕의 이야기입니다. 혼인비행(nuptial flight)을 마친 여왕이 직접 곰개미 굴에 침입하는 장면인데요. 혼인비행이란 생식 능력을 가진 공주개미와 수개미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공중에서 짝짓기를 하는 행동으로, 곰개미처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일대의 모든 왕국이 동시에 비행을 시작하는 방식으로 근친교배를 막습니다.

    사무라이개미 여왕은 스스로 왕국을 세울 수 없어서 처음부터 남의 왕국을 빼앗아야 합니다. 수 시간 동안 공격을 버텨내며 곰개미들의 전투 배치를 파악하고, 결국 곰개미 여왕을 직접 공격해 치명상을 입힙니다. 그러자 일개미들이 하나둘 침입자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합니다. 개미는 페로몬(pheromone)을 통해 여왕의 상태를 감지하는데, 페로몬이란 개미가 분비하는 화학 신호로 먹이 위치, 경보, 왕국 구성원 식별 등 개미 사회의 사실상 모든 소통에 쓰입니다. 기존 여왕의 신호가 약해지면 강한 신호를 내는 쪽을 따르는 본능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직장 조직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는 앞에서 싸우고, 누군가는 기록하고, 누군가는 후배를 챙기듯, 개미 사회도 그렇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동시에 한 리더가 무너지면 조직 전체가 순식간에 재편될 수 있다는 사실도 개미 사회가 꽤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자연은 낭만적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장면만큼은 그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분개미의 약탈 전략도 인상 깊었습니다. 정찰개미가 페로몬으로 길을 표시해 돌아오면, 수천 마리의 분개미가 그 냄새 길을 따라 곰개미 굴을 급습합니다. 이들이 노리는 건 고치입니다. 고치 상태로 납치해 오면 태어난 곰개미가 자신을 분개미 왕국의 일원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분개미는 긴 시간 애벌레를 키우지 않고도 단 며칠 만에 노동력을 확보합니다. 이처럼 다른 종의 개미를 노예처럼 이용하는 생태를 노예 만들기(dulosis)라 하며, 전 세계적으로 약 50여 종의 개미에서 이 행동이 관찰됩니다(출처: 국립생물자원관).

    공생과 기생 사이, 선악 없는 생존의 논리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사무라이개미의 약탈은 나쁜 건가, 담흑부전나비 애벌레가 개미굴에 더부살이하는 건 좋은 건가. 제 경험상 이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입니다.

    담흑부전나비 애벌레는 개미굴에서 먹이와 보호를 받는 대신 감로(honeydew)를 제공합니다. 감로란 애벌레가 몸의 분비샘에서 내보내는 과당·아미노산이 풍부한 단물로, 일본 왕개미가 매우 좋아하는 물질입니다. 개미는 이 단물을 얻기 위해 애벌레를 굴 안으로 직접 데려오고, 심지어 여왕개미도 이들을 돌봅니다. 개미집귀뚜라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개미의 페로몬을 몸에 직접 복제해 동료로 위장하고 굴 안을 자유롭게 활보하며 고치까지 훔쳐먹습니다.

    이 모든 관계를 보면서 저는 조직 안에서의 공생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진짜 이득이 되는 공생인지, 일방적으로 착취당하는 구조인지는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압니다. 개미들도 어느 순간 담흑부전나비 애벌레와 영양 교환을 기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제 경험상 이건 꽤 묵직한 메시지처럼 읽혔습니다.

    한편 백강균(Beauveria bassiana)에 감염된 개미가 굴 근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죽음을 맞는 장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백강균이란 곤충의 피부 조직에 침투해 내부에서 번식하는 병원성 곰팡이로, 감염된 개미의 행동을 조종해 포자를 가장 멀리 퍼뜨릴 수 있는 장소로 이동시킵니다. "좀비 개미"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셈입니다. 이러한 병원성 미생물과 숙주의 관계는 생태계 균형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며, 관련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곤충학회).

    자연은 착한 쪽이 살아남는 세계가 아니라, 살아남는 쪽이 전략을 가진 세계입니다. 땅속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이 단순히 "잔혹하다"는 말 한마디로 정리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침략도, 기생도, 공생도 결국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기기 위한 수백만 년의 진화 결과입니다. 개미 한 마리를 다시 보게 되는 건 그때부터입니다. 다음에 산길을 걷다 개미 행렬을 만난다면, 한 번쯤 멈춰서 바라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 눈을 떼지 못하게 될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jpELNSZN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