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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예쁘다"고 느끼다가, 문득 길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사람에게는 낭만인 계절이 작은 생명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전쟁이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황제펭귄, 북극곰, 순록, 일본원숭이 새끼들의 혹한 생존 이야기는 그 감각을 훨씬 깊게 건드렸습니다.

    극지방 사진
    극지방 사진

    겨울이라는 계절을 너무 사람 중심으로 봐온 건 아닐까

    겨울을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눈 사진 찍으러 여행 계획을 세우고, 눈 오는 날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걸 즐겼죠. 그런데 야생동물의 혹한 생존 실태를 들여다보면 그 낭만이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남극은 겨울철 기온이 섭씨 영하 80도까지 내려가기도 합니다. 황제펭귄 수컷은 이 극한 환경에서 알을 품은 채 백일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합니다. 체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이 상태를 동물행동학에서는 번식 투자(reproductive investment)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번식 투자란 한 개체가 자신의 생존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동 전략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본능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걸 보면서 "책임"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북극곰 어미는 8개월 가까이 거의 먹지 못한 채 새끼를 낳고 굴 밖으로 나옵니다. 제가 하루 굶으면 예민해지는 것과 비교하면, 이건 비교 자체가 민망한 수준입니다. 어미가 굶주리는 상황이 아름다운 자연이라기보다 냉정한 현실에 가깝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장난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생존 훈련이었다

    새끼 동물들이 노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눈덩이를 만들어 굴리는 일본원숭이 새끼, 서로 뒤엉켜 장난치는 황제펭귄 새끼들. 귀엽다는 말이 자동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을 의식하게 됐습니다. 저 장난이 사실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물행동학에서는 어린 동물의 놀이를 행동 리허설(behavioral rehearsal)이라고 부릅니다. 행동 리허설이란 실제 생존 상황에서 필요한 동작과 판단력을 반복 연습함으로써 신경 회로를 강화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새끼 순록이 뛰놀며 익히는 빠른 방향 전환은 나중에 늑대 무리를 피할 때 쓰이고, 새끼 북극곰이 어미 곁에서 물범 사냥을 지켜보는 것도 그 자체로 학습입니다.

    실제로 새끼 순록이 무리에서 떨어진 순간, 흰꼬리수리에게 낚아채이는 장면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무리에서 멀어지는 것이 곧 죽음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남겨진 새끼들이 뼈저리게 배우는 장면이었죠. 무리 생활의 생존 이점을 생태학에서는 희석 효과(dilution effect)라고 설명합니다. 희석 효과란 집단 내 개체 수가 많을수록 포식자에게 잡힐 개별 확률이 낮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출처: 국립생태원).

    어미 없이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결국 어미의 역할이었습니다. 황제펭귄 어미는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기 두 달 전부터 80킬로미터 밖 먼 바다로 나가 먹이를 구합니다. 돌아오면 2만 마리가 넘는 펭귄 무리 속에서 자기 가족의 울음소리를 정확하게 찾아냅니다. 이걸 보고 감동이라는 말이 안 나오는 분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장면들이 지나치게 감동적으로 편집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자연 다큐멘터리가 모성애를 강조하다 보면 동물의 고통이 조금 낭만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미 펭귄이 돌아오지 못한 경우, 새끼 순록 한 마리가 포식자에게 잡힌 경우는 화면에 잠깐 스치고 지나가지만, 현실에서 그 비율은 결코 낮지 않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황제펭귄 개체군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빙 감소로 2100년까지 최대 86%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출처: WWF).

    일본원숭이 새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리의 서열 구조 안에서 막내로 태어나 친구를 사귀고, 무리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단순히 귀여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안 됐을 때 다가오는 겨울은 정말 위험합니다. 온천에서 몸을 녹이는 장면조차 살아남기 위한 선택입니다.

    독립은 언제나 무섭고, 그래도 뛰어드는 것이다

    새끼 황제펭귄이 처음 바다 앞에 서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뛰어드는 그 순간, 뭔가 인간적으로 공감이 됐습니다. 저도 처음 사회에 나갔을 때, 처음 혼자 낯선 도시에 갔을 때, 그 비슷한 감각이 있었습니다. 준비가 됐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뛰어들 수밖에 없는 순간 말이죠.

    새끼 동물들의 독립 준비 과정을 보면 공통적인 단계가 보입니다.

    • 어미의 보호 아래 기술을 관찰하는 단계
    • 직접 시도하며 실패를 경험하는 단계
    • 무리 또는 환경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단계
    • 어미의 지원 없이 스스로 생존을 시험하는 단계

    이 흐름은 인간의 발달 단계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과도 맞닿아 있죠. 애착 이론이란 어린 개체가 주 양육자와 형성하는 정서적 유대가 이후 독립적 행동 능력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는 이론으로,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어미가 있기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고, 어미가 가르쳐줬기에 살아남는 겁니다.

    겨울을 버티고 봄을 맞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능동적인 행위인지 보여줍니다. 귀여운 새끼 동물 이야기로 소비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무게가 꽤 묵직합니다.

    이 이야기를 보고 나서 겨울 풍경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눈이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눈 속에서 지금 무언가가 버티고 있다는 생각도 함께 드는 것 같습니다. 관심이 생겼다면 야생동물의 계절별 생태를 다룬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게 겨울을 보는 눈을 조금 넓혀주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qM-6MVC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