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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약 8천만 년 동안 다른 대륙과 단절된 채 독자적인 생태계를 유지해 온 땅입니다. 숲 속에 펭귄이 살고 눈 덮인 산에 앵무새가 사는 풍경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단순히 "신기하다"는 생각을 넘어 뭔가 묘하게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아름다운 장면 뒤에 오랜 고립과 최근의 파괴가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8천만 년 고립이 만든 섬 생물지리학
일반적으로 뉴질랜드를 떠올리면 청정 자연과 아름다운 피오르드랜드 풍경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가 관련 자료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 아름다움이 단순한 지리적 행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뉴질랜드는 약 8천만 년 전 거대 초대륙 곤드와나(Gondwana)에서 분리됐습니다. 여기서 곤드와나란 오늘날의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남극 대륙, 호주 등이 하나로 붙어 있던 고대 초대륙을 말합니다. 분리 이후 뉴질랜드에는 대형 육지 포유류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 결과 조류와 파충류가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차지하는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됐습니다.
섬 생물지리학(Island biogeography)이란 고립된 섬이나 지역에서 생물종의 분포와 진화 방식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쉽게 말해, 고립된 환경에서 생물이 어떻게 특이한 방향으로 진화하는지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뉴질랜드는 이 이론의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날지 못하는 키위,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앵무새 카카포, 숲 속에서 집단 서식하는 스네어스 펭귄이 모두 이 고립의 산물입니다.
스네어스 펭귄이 바다에서 돌아와 절벽을 기어오르고 1킬로미터가 넘는 숲길을 헤치며 새끼를 찾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이상하게 퇴근 후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직장인이 떠올랐습니다.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결국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반복이라는 점에서요.
외래종 유입과 멸종 위기
뉴질랜드의 토착종이 처한 현실은 그 아름다운 자연 다큐 장면과는 꽤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뉴질랜드는 자연이 잘 보전된 나라"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자료를 살펴보니 실상은 훨씬 복잡했습니다.
인간이 처음 뉴질랜드에 정착한 이후 모아(Moa)를 비롯한 대형 조류가 불과 200년 만에 전부 멸종했습니다. 그리고 1883년 북방 족제비(Stoat)가 유입되면서 토착 조류는 또 한 번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북방 족제비는 빠른 대사율 때문에 하루에 다섯 번 이상 먹이를 섭취해야 하는데, 천적이 없는 뉴질랜드에서 그 공격성은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자기 몸무게의 열 배가 넘는 상대도 공격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카카포(Kākāpō)는 그 피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카카포는 앵무새 중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종으로, 날지 못하고 번식 주기가 매우 길어 10년에 두세 번밖에 새끼를 낳지 않습니다. 소방 현장에서 재난 대응을 생각할 때도 느끼는 건데, 결국 가장 위험한 건 평소에 안 보이는 위험입니다. 카카포처럼 느리게 살아온 생물에게 갑작스러운 외부 포식자는 말 그대로 예고 없는 재앙이었습니다.
뉴질랜드 환경보전부(Department of Conservation, DOC)에 따르면, 현재 카카포의 전체 개체수는 200마리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여전히 극도로 위태로운 상태입니다(출처: 뉴질랜드 환경보전부).
멸종 위기에 처한 대표적인 뉴질랜드 토착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카카포(Kākāpō): 날지 못하는 세계 최대 앵무새. 현재 코드피시 섬(Codfish Island) 등 격리 섬에서 집중 관리 중
- 남부 갈색 키위(Southern Brown Kiwi): 부리 끝에 콧구멍이 있는 유일한 조류. 야행성으로 낮 활동 포식자를 피해 밤에만 움직임
- 체텀 검은 울새(Chatham Island Black Robin): 1980년대 단 7마리까지 줄었다가 현재 수백 마리로 회복 중
- 투아타라(Tuatara): 쥐라기 시대부터 살아온 파충류로, 한 시간에 한 번만 숨을 쉴 정도로 대사 속도가 느림
지질 활동과 생태계의 공존
뉴질랜드를 이야기할 때 생물 이야기만 하면 절반밖에 못 한 겁니다. 이 땅 자체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뉴질랜드는 태평양판(Pacific Plate)과 오스트레일리아판(Australian Plate)이 만나는 경계 위에 있습니다. 여기서 지각판(Tectonic Plate)이란 지구 표면을 이루는 거대한 암석 조각들로, 이것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어긋나면서 지진, 화산, 산맥 형성 같은 지질 현상이 발생합니다. 뉴질랜드에는 한 해 약 2만 건의 지진이 기록됩니다. 대부분은 약한 진동이지만,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규모 6.3의 지진으로 18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가 이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이야기에서 특히 멈칫했던 건, 생존자 엘리자베스 피트콘의 말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난 대응 관련 일을 하다 보면 이 문장이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위험은 항상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됩니다.
역설적으로, 이 지질 활동이 뉴질랜드의 생태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카이코라(Kaikōura) 앞바다에서는 해저 협곡이 심해의 영양분을 해수면 가까이로 끌어올려 향유고래와 더스키 돌고래(Dusky Dolphin)가 밀집하는 풍요로운 먹이터가 형성됩니다. 더스키 돌고래는 공중 점프를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이들의 다양한 점프 동작이 무리 협동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출처: 뉴질랜드 해양연구소 NIWA).
뒤늦은 책임, 생태 보전의 현재
뉴질랜드가 인상적인 이유는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만든 문제를 일정 부분 인정하고, 뒤늦게라도 수습에 나서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물론 자연 다큐는 아름다운 장면을 많이 보여주다 보니 인간이 만든 파괴의 무게가 조금은 가볍게 지나가는 느낌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감동적으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카카포가 본토에서 사라져 격리 섬에서 개체 수를 겨우 유지하는 현실 자체가 인간이 만든 결과입니다.
생태 복원(Ecological Restoration)이란 인간 활동으로 손상된 생태계를 원래 상태에 가깝게 되돌리려는 과학적 작업을 말합니다. 뉴질랜드의 카카포 회복 프로젝트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례입니다. 코드피시 섬처럼 외래 포식자를 완전히 제거한 격리 섬에서 모든 개체에 이름을 붙이고 개별 관리하는 방식은, 생물다양성(Biodiversity) 보전 측면에서 교과서적 모델로 평가받습니다. 생물다양성이란 특정 지역에 얼마나 다양한 생물종이 존재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생태계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입니다.
카카포 대사 시로코(Sirocco)가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자연보호 활동을 알리는 장면은, 사실 꽤 묘한 기분을 줍니다. 한편으로는 귀엽고 유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 새 한 마리에게 종의 존립이 달린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를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지킨다는 건 감동적인 장면에 잠깐 숙연해지는 것과는 다른 일입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이 보여주는 건 그 불편하고 지루한 책임을 실제로 떠안는 모습입니다. 카카포 한 마리가 다시 신베드 협곡에서 울음소리를 내는 날이 온다면, 그건 자연이 스스로 회복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수십 년 동안 그 책임을 놓지 않은 결과일 겁니다. 뉴질랜드 야생에 관심이 생겼다면, 뉴질랜드 환경보전부 카카포 프로젝트 페이지를 직접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아름다운 사진보다 훨씬 진한 무언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