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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화산 바로 옆에 인구 10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마지막 폭발 때 용암이 도시를 세 동강 냈던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짓고. 니라공고산 다큐멘터리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한동안 멍해졌습니다.

경고 시스템이 없으면 몇 시간도 못 버팁니다
2002년 니라공고산이 폭발했을 때 용암은 공식 기록 기준 시속 40km로 흘러내렸습니다. 고마시까지 11km 거리를 감안하면 경고 없이는 채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도시가 위협받는 셈입니다. 저는 이 수치를 보는 순간 몇 년 전 강원도 산불 뉴스를 밤새 지켜봤던 기억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당시 "설마 저렇게까지 번지겠어" 했는데, 바람 방향 하나에 마을 전체가 순식간에 위협받는 걸 보면서 자연 앞의 무력함을 실감했죠. 니라공고산 앞에 선 고마 시민들은 그걸 매일 안고 삽니다.
탐사팀이 분화구 안으로 내려간 건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습니다. 핵심 목표는 마그마 체임버의 압력 변화를 간접적으로 읽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마그마 체임버란 지하 깊숙한 곳에 마그마가 고여 있는 공간으로, 여기서 압력이 올라갈 때 폭발이 시작됩니다. 문제는 이 공간이 지하 1km 이상 아래에 있어 직접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주목한 것이 초저주파음(Infrasound) 모니터링입니다. 초저주파음이란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20Hz 이하의 낮은 주파수 음파를 뜻하며, 용암호수의 수위가 오르내릴 때 음색이 변하는 원리를 이용합니다. 슬라이드 트롬본의 관 길이에 따라 음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마이크를 분화구 가장자리에 설치해 두면 멀리서도 수위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고, 이 수치가 급변하면 폭발 임박 신호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게 이번 탐사에서 가장 실용적인 성과였습니다.
탐사팀이 확인한 경고 시스템의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용암호수 수위 변화: 마그마 체임버 압력을 간접적으로 반영하며, 40m 이상 급변할 경우 폭발 임박 신호로 판단
- 화산 가스 성분 분석: 아황산가스(SO₂) 농도가 높아지면 새로운 마그마가 상승하고 있다는 징후
- 초저주파음 감지: 수위 변화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어 상시 경보 시스템에 가장 적합
이산화탄소의 위협,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섭습니다
저는 화산 하면 당연히 용암과 폭발만 떠올렸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고마 외곽 마을에서 과학자들이 염소를 데리고 땅의 움푹 꺼진 곳으로 들어가자, 멀쩡하게 서 있던 염소가 몇 분 만에 쓰러졌습니다. 원인은 이산화탄소(CO₂)였습니다.
이산화탄소는 무색무취 가스입니다. 냄새도 없고 연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공기보다 무거워서 땅이 꺼진 구덩이나 저지대에 가라앉아 축적됩니다. 이 지역에선 화산 시스템에서 새어 나온 이산화탄소가 수천 개의 얕은 구덩이에 고여 있습니다. 이런 장소를 현지에서는 '마주쿠(Mazuku)', 즉 '악한 바람'이라고 부릅니다. 어른보다 키가 작은 아이들이 특히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스 농도가 높은 지표면 가까이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관측소 과학자들이 염소를 이용해 주민들에게 위험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기 가면 안 돼"라는 말 한마디보다, 쓰러지는 염소 한 마리가 훨씬 강렬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요.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을수록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 장면 하나가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화산 지역에서의 이산화탄소 위협은 전 세계적으로도 확인된 사례가 있습니다. 1986년 카메룬의 니오스 호수에서 이산화탄소가 갑자기 대량 방출되어 인근 주민 1,70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미국 지질조사국(USGS)).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실제로는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용암 점성이 낮을수록 대피 시간이 짧아집니다
분화구 3단계 지층 바닥에서 채취한 신선한 용암 샘플은 불길한 결과를 담고 있었습니다. 암석학자 올리비에가 분석한 결과, 이 용암은 실리카(SiO₂) 함량이 40% 이하로 매우 낮은 저점성 용암으로 확인됐습니다. 여기서 점성(Viscosity)이란 액체가 얼마나 끈적하게 흐르는지를 나타내는 물성으로, 점성이 낮을수록 용암이 더 빠르게 흘러내립니다. 꿀과 물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결정(Crystal) 함량도 적었습니다. 결정이란 마그마가 냉각되면서 생기는 고체 입자로, 용암 안에 결정이 많을수록 흐름이 느려집니다. 니라공고산의 용암은 결정도 적고 실리카도 낮아, 다음 폭발 때는 2002년보다 더 빠르게 고마까지 도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시속 40km였던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뜻입니다.
이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단 하나, 대피 시간이 더 짧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인 한 명이 지진이 잦은 지역에서 살았던 경험을 들려준 적 있습니다. 처음엔 작은 흔들림에도 놀라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익숙해졌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마 시민들도 비슷할 것입니다. 화산과 함께 사는 일상이 익숙해졌더라도, 대피할 시간이 단 몇 분이라도 줄어든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됩니다.
화산 활동 모니터링과 대피 체계의 중요성은 국제화산학 및 지구내부학협회(IAVCEI)에서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화산 폭발 자체보다 조기 경보 체계의 부재가 인명 피해를 키운다는 분석이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출처: IAVCEI). 제 경험상 이런 연구 결과가 실제로 현장에 적용되기까지의 간극이 늘 아쉽게 느껴집니다.
재난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위험 지역을 떠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고마 시민들은 생계를 위해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땅 위에서 다시 집을 짓고 삽니다. 탐사팀의 연구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기 경보 시스템 하나가 수십만 명에게 몇 시간을 더 벌어줄 수 있고, 그 몇 시간이 생사를 가릅니다. 화산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 결국 그 위험을 이해하고 대비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