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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미어캣을 봤을 때 그냥 귀엽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직립보행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귀여운 캐릭터 같았죠. 그런데 칼라하리 사막에서 태어난 새끼 미어캣 스위프트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귀여움 뒤에 이렇게 치열한 삶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미어캣 사진
    미어캣 사진

    새끼가 두 달을 버틸 확률이 50%라는 말

    야생에서 막 태어난 미어캣 새끼가 생후 두 달을 넘길 가능성은 약 50%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평년의 이야기이고, 비가 내리지 않는 극건조 시기에는 먹이 자원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생존율은 더 낮아집니다. 칼라하리 사막의 강수량 부족은 유충과 애벌레가 땅 깊이 숨어버리게 만들고, 미어캣 무리 전체가 평소보다 훨씬 넓은 구역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스위프트는 태어난 지 5주 됐을 때 몸무게가 사과 한 개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 작은 몸으로 밤새 체온을 유지하는 데만 체중의 5%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아침이 되면 빠르게 배를 채우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어미젖 먹고 크는 줄만 알았는데, 하루하루가 이렇게 치열할 줄은 몰랐습니다.

    건조 기후 생태계에서 먹이 밀도(Prey Density)가 낮아지면 포식자와 피식자 모두에게 극단적인 압박이 가해집니다. 여기서 먹이 밀도란 특정 면적 내에 존재하는 먹잇감 개체 수를 의미하는데, 이 수치가 낮을수록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더 넓은 범위를 이동하고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스위프트가 처한 상황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무리의 생존본능, 우두머리 암컷 넬리의 판단

    미어캣 무리인 위스커는 총 25마리로 구성되어 있고, 무리의 대장은 암컷 넬리입니다. 넬리의 결정이 곧 무리 전체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이웃 무리의 영역을 침범할지, 도로를 건널지, 야간에 낯선 굴에서 잠을 잘지 모두 넬리가 판단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리더의 결정이 단순히 전략이 아니라 생사의 문제라는 점이었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처음 낯선 환경에 들어갈 때 저도 누군가 뒤를 따르며 눈치를 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위프트가 넬리의 발소리를 따라 도로를 건너는 장면이 그때 제 모습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미어캣 무리는 영역 방어를 위한 집단행동을 취할 때 전투 디스플레이(Threat Display)라는 행동을 사용합니다. 전투 디스플레이란 꼬리를 곧게 세우고 등을 둥글게 구부린 채 집단으로 전진하며 몸집을 과시하는 위협 행동입니다. 실제 물리적 충돌 없이 상대 무리를 도망치게 만드는 효과적인 전술로, 무리의 크기가 클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넬리가 이끄는 위스커 무리가 경쟁 무리를 물러나게 했을 때, 싸움이 아니라 이 위협 과시 덕분이었습니다.

    야생동물의 무리 행동과 지도자 역할에 관한 연구는 꾸준히 축적되어 왔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동물행동학 연구에서도 사회성 포유류의 집단 의사결정이 생존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Cambridge Animal Behaviour Group).

    어네스토의 귀환, 약한 것과 강한 것 사이

    스위프트의 사촌 어네스토는 어느 날 밤 케이프 코브라에게 물렸습니다. 케이프 코브라(Cape Cobra)는 아프리카 남부에 서식하는 독사로, 신경독(Neurotoxin)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경독이란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독성 물질로, 체중이 1kg도 안 되는 미어캣에게 단 한 번의 교상(咬傷)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앞을 볼 수 없게 되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태에서 어네스토는 홀로 독과 싸워야 했습니다.

    무리는 어네스토를 놔두고 먹이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냉정해 보이지만, 먹이를 구하지 않으면 새끼들이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칫했던 건, 자연이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동정과 생존이 동시에 가능하지 않을 때, 무리는 생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어네스토는 살아 돌아왔습니다. 미어캣은 케이프 코브라 독에 대한 부분적인 면역력을 가지고 있어 치사량 이하의 독에서는 회복이 가능합니다. 어네스토의 귀환은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싶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약해 보여도 버티는 힘이 있다는 게, 이런 식으로 증명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야생 적응의 마지막 관문, 전갈 사냥 배우기

    미어캣이 완전히 독립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기술 중 하나가 전갈 처리입니다. 전갈은 미어캣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이지만, 독침을 지닌 종은 사람을 죽일 만큼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습니다. 성체 미어캣은 전갈독에 대한 내성(Venom Tolerance)을 갖추고 있는데, 내성이란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특정 독성 물질에 대한 신체 반응이 둔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하지만 스위프트처럼 아직 어린 개체는 이 내성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아 잘못 다루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어네스토는 스위프트에게 직접 전갈 처리 방법을 가르쳐줬습니다. 꼬리를 물어 독침을 무력화한 뒤 건네주는 방식으로, 새끼가 직접 안전하게 먹이를 처리하는 감각을 익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뱀에게 물렸다가 살아남은 사촌이 다음 세대에게 생존 기술을 전수하는 이 장면은 다큐 전체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스위프트가 두 달이 되던 시점에 익혀야 했던 생존 기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후각을 활용한 먹이 탐지 및 영역 내 타 무리 감지
    • 포식자 경보 소리 구별과 대피 행동
    • 전갈 독침 무력화 기술 습득
    • 무리의 위계 구조 안에서 자기 서열 형성

    이 네 가지를 익혀야 비로소 독립된 개체로서 살아갈 준비가 됩니다. 국립생태원의 야생동물 생태 자료에 따르면, 사회성 포유류는 유년기에 무리 내 학습 행동을 통해 생존 기술을 습득하는 비율이 단독 생활 종보다 월등히 높다고 합니다(출처: 국립생태원).

    스위프트의 이야기를 다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하게 됐습니다. 결국 이 작은 미어캣이 살아남은 건 혼자서 강해서가 아니라, 무리가 함께 경계하고 먹이를 나누고 기술을 가르쳐준 덕분이었습니다. 자연을 보면서 사람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이따금 있는데, 스위프트가 그랬습니다. 칼라하리 사막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스위프트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QXeEtXpb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