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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북극곰을 그냥 귀엽고 하얀 곰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가족들과 주말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아, 새끼가 귀엽다" 정도가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카메라맨이 플라스틱 얼음 상자 안에 들어가 북극곰과 코앞에서 마주하는 장면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동물 영상이 아니었습니다.

플라스틱 상자 하나로 북극곰과 마주하다
야생동물 카메라맨 피오 캐넌이 북극 촬영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꽤 무모해 보였습니다. 투명 플라스틱 얼음 상자 안에 들어가 북극곰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는데, 제가 직접 겪어보니 가 아니라 화면으로만 봐도 식은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북극곰은 후각이 인간보다 수천 배 발달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상자 문 쪽 틈새로 냄새를 집중적으로 맡으며 접근 가능성을 파악합니다. 이 행동은 북극곰이 물범을 사냥할 때 쓰는 매복 전략과 동일한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북극곰 입장에서 상자 안의 카메라맨은 냄새는 나는데 꺼내기 어려운 먹잇감이었던 셈입니다.
북극곰의 사냥 성공률은 약 5%에 불과합니다. 사냥 성공률이란 먹이를 실제로 잡는 데 성공하는 비율을 뜻하는데, 스무 번 시도해서 겨우 한 번 잡는다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북극곰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극도로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상자를 몇 번 밀어보다 포기하고 떠나는 것도 그 본능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공포보다 열정이 앞서서 북극에 갔다고 했지만, 그날 처음으로 두려움이 열정을 앞질렀다는 카메라맨의 말이 솔직하게 와닿았습니다.
서식지 변화가 부른 위기, 얼음이 없어지면 곰도 없어진다
4월의 북극, 원래라면 스노모빌로 단단한 얼음 위를 달려야 할 시기인데 배로 항해를 했다는 대목에서 저는 잠시 멈칫했습니다. 20년간 그 항로를 다닌 선원조차 처음 겪는 상황이라고 했거든요.
해빙 감소(sea ice los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해의 얼음 면적이 줄어드는 현상으로, 이게 단순히 경관의 문제가 아니라 북극곰의 생존 기반 자체가 사라지는 문제입니다. 북극곰은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물범을 사냥합니다. 얼음이 줄면 사냥터가 줄고, 사냥터가 줄면 굶주림으로 이어집니다. 그 굶주린 곰이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인간과의 충돌도 늘어납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연구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 북극곰 개체수의 3분의 2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출처: 미국 지질조사국). 제가 뉴스에서 기후변화 관련 기사를 읽을 때는 솔직히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졌는데, 북극곰 어미가 굴 안에서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든 채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을 보고 나서야 실감이 됐습니다. 추상적인 숫자가 구체적인 존재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해빙 감소가 북극곰에게 미치는 영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물범 사냥 가능 시간이 줄어들어 연간 섭취 열량이 감소함
- 육지로 이동하는 시간이 늘어나 에너지 소모가 증가함
- 어미 곰의 체중 감소로 수유 능력이 떨어져 새끼 생존율이 하락함
- 먹이를 찾아 인간 거주 지역에 접근하는 사례가 증가함
어미 라이라와 두 새끼가 가르쳐준 것
굴 밖으로 처음 얼굴을 내민 미키와 루카를 봤을 때, 저는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뭔가 어딘가에서 본 장면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갔던 날이 겹쳤던 겁니다. 안전하고 좁은 공간에서만 살다가 훨씬 넓고 위험한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 사람 이야기와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어미 라이라는 굴 속에서 약 6개월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은 동면(torpor)에 해당하는데, 일반적인 겨울잠과는 다릅니다. 완전한 수면이 아니라 체온과 심박수를 낮춘 상태에서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준각성 상태입니다. 이 기간 동안 라이라의 체중은 절반으로 줄었고, 그 몸으로 미키와 루카를 6개월 동안 먹여 살렸습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시기에 체력적으로 바닥이 났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나 하나 챙기기도 버겁다"고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런 처지에서 라이라의 이야기를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또 용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생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새끼를 먼저 챙기는 그 본능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북극곰 전문가 제이슨 로버츠와 생물학자 아스박사 팀이 라이라에게 위성추적 장치를 달고 혈액을 채취한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장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4시간마다 라이라의 위치 정보를 이메일로 전송합니다. 데이터 기반의 추적 덕분에 연구자들은 개체군(population) 이동 경로와 생존 여부를 원격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개체군이란 같은 지역에 살면서 서로 번식하는 동일 종의 집단을 말합니다.
관찰이냐 개입이냐, 인간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다
제가 이 다큐를 보면서 불편하게 느낀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라이라를 마취시키고 새끼들을 끈으로 묶어두는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연구 목적이고 숙련된 전문가들이 진행한 작업이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어미가 쓰러진 옆에서 새끼들이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보호인지 간섭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북극곰을 취약(Vulnerable)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출처: IUCN 적색목록). 여기서 취약 등급이란 현재 개체수가 감소 추세에 있으며 적절한 보전 조치가 없으면 멸종 위기 등급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상황에서 위성추적과 건강 검진은 분명 필요한 과학적 개입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어디까지가 관찰이고 어디부터가 간섭인지에 대한 물음이 계속 남았습니다. 이 다큐의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그 물음을 시청자에게 직접 던진다는 점입니다. 새끼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폐사율 50%라는 냉정한 현실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감동만 파는 영상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같이 고민하게 만드는 구성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환경 다큐는 감성적인 장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 경험상 그런 방식은 다 보고 나면 "안타깝다"는 감정으로 끝납니다. 이 다큐는 달랐습니다. 기후변화가 만든 얼음 없는 4월을 눈으로 보여주고, 그 결과가 굶주린 곰과 생존 위협이라는 구체적인 현실로 연결되는 과정이 명확했습니다.
미키와 루카가 어미를 따라 눈 언덕을 넘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한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저 조그만 발로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북극곰이 처한 현실은 결국 우리가 만든 환경 변화가 불러온 결과입니다. 직접 북극에 갈 수 없더라도, 이 이야기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