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수사자의 평균 재위 기간은 고작 2년 남짓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왕 중의 왕이라는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으니까요. 사자와 하이에나 중 누가 더 강한가라는 질문보다, 어떤 구조가 더 오래 살아남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들었습니다.

사바나 생태계, 두 동물의 서로 다른 판
사자를 '동물의 왕'으로 부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표현이 절반쯤은 인간의 감정이 투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마사이마라 국립 보호구역처럼 실제 사바나 생태계에서는 위엄보다 적응력이 생존을 결정합니다. 사자 무리는 화강암 바위산처럼 새끼가 숨기 좋고 주변에 물웅덩이가 있는 거점을 중심으로 세력권, 즉 텃세권(territory)을 유지합니다. 여기서 텃세권이란 먹이와 번식 자원을 독점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동물이 방어하는 공간적 범위를 뜻합니다.
하이에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같은 공간을 씁니다. 이들은 암컷이 무리를 이끄는 모계 사회(matriarchal society)를 형성합니다. 모계 사회란 암컷이 사회적 서열의 정점을 차지하고 무리의 자원 배분과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수컷이 2년마다 교체되는 사자 무리와 달리, 하이에나는 지위가 높은 암컷을 중심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결속을 유지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조직 구조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안정된 위계가 있는 조직이 잦은 리더십 교체를 겪는 조직보다 오래 버티는 경우를 주변에서도 많이 봤으니까요.
실제로 아프리카 사바나의 대형 포식자 개체 수 변동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하이에나 무리는 사자 무리보다 내부 갈등으로 인한 분열 빈도가 낮고 세대 연속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African Wildlife Foundation).
사회적 위계가 만드는 생존의 차이
사자와 하이에나의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사냥 후 먹이를 두고 벌어지는 경합입니다. 제가 직접 영상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건 하이에나가 먹이를 빼앗는 방식이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숫자를 늘리면서 사자를 밀어내는 방식이었는데, 이건 단순한 공격성이 아니라 정보 공유와 집단 의사결정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하이에나의 집단 사냥 전략에서 핵심은 연합 행동(coalition behavior)입니다. 연합 행동이란 단독으로는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체들이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세 마리의 암컷 하이에나가 지위가 높은 개체에게 도전하는 장면은, 연합 행동이 내부 서열 상승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셋이서 해낸 겁니다.
반면 사자 무리 내부는 수컷 교체 시기마다 격렬하게 흔들립니다. 새로운 수사자가 기존 수컷을 쫓아내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수컷 새끼들도 무리를 떠나야 합니다. 형제 사자들이 함께 떠돌며 새 영역을 찾는 과정은 혹독하지만, 동시에 이 경험이 이들을 더 강한 사냥꾼으로 만드는 훈련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사자의 구조가 반드시 열등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안정성과 기동성,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는 게 자연의 현실인 듯합니다.
사자와 하이에나의 생존 전략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자: 텃세권 기반의 거점 방어, 암컷 협력 사냥, 수컷 주기적 교체로 인한 불안정성
- 하이에나: 모계 중심 위계 구조, 연합 행동을 통한 먹이 경쟁, 세대 간 결속력 유지
- 공통점: 집단생활, 동종 간 경쟁이 이종 간 경쟁 못지않게 치열함
생존 전략, 조직과 개인에게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
늙은 수사자가 썩은 고기로 연명하다 하이에나에게 밀려나는 장면은 제가 본 영상 중 가장 씁쓸했습니다. 한때는 무리를 이끌었겠지만, 신체 능력이 떨어지자 과거의 지위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살면서 예전 실력이나 자존심만 믿고 버티다가 현실에서 무너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장면이 겹쳐 보였습니다.
자연에서는 이것을 적응도(fitness)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적응도란 현재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개념으로, 과거의 기록이나 잠재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실질적 역량을 기준으로 합니다. 환경이 바뀌면 적응도도 달라집니다. 사바나에 불이 나고, 우기가 오고, 새로운 무리가 들어오는 변화 속에서 고정된 강자는 없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 사자 개체 수는 지난 20년간 약 43% 감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출처: WWF). 이는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먹이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왕'이라 불리는 사자가 하이에나보다 환경 변화에 더 취약한 셈입니다.
결국 사자와 하이에나 중 누가 더 강하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분법은 대부분 실제 현실을 단순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조건에서 싸우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강한 개체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지금 환경에 맞는 구조를 가진 쪽이 오래 버팁니다. 사자를 응원하든 하이에나의 전략에 주목하든, 그 판단은 결국 독자 각자의 몫입니다. 다만 이 영상을 보고 나서 "강함"이라는 단어를 예전처럼 단순하게 쓰기가 어려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