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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을 꼽으라면 단연 성경입니다. 20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수십억 명이 읽고 있지만,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수됐는지를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할머니 댁에 있던 낡은 성경책을 정리하면서 "책 한 권인데 왜 이렇게 손이 안 가지?"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 감각이 어디서 오는 건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됩니다.

    성경 사진
    성경 사진

    토라 필사본, 한 글자도 틀리면 안 되는 이유

    유대인들의 율법서 토라는 지금도 손으로 직접 만듭니다. 칠면조 깃털로 만든 펜, 직접 제조한 잉크, 정결하게 처리한 양피지. 작업 전에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의식을 거칩니다. 토라 한 권을 완성하는 데 보통 4~5년이 걸립니다.

    여기서 소페림(Soferim)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소페림이란 유대 전통에서 경전을 필사할 자격을 갖춘 서기관을 뜻하는 말로, 아무나 할 수 없고 특별히 선택된 사람만 이 작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수차례 덧칠을 거쳐야 하고, 단 한 글자라도 틀리면 그 단락 전체를 다시 써야 합니다.

    제가 직접 이 과정을 설명하는 영상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의 손으로, 오차 없이, 그것도 신앙의 무게를 얹어 이어왔다는 사실이 단순한 종교적 관습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집착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종교를 떠나, 인간이 어떤 가치를 지키려 할 때 얼마나 집요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유대인들은 토라가 바닥에 떨어지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최소 3일, 어떤 커뮤니티는 40일까지 금식을 한다고 합니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생각해 보면 저도 할머니 성경책을 그냥 버리지 못하고 한참 망설였습니다. 그 책 위에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누군가 힘든 시절을 버텨낸 시간이 배어 있었으니까요. 믿음의 깊이가 다를 뿐, 경전을 대하는 마음의 결은 어쩌면 비슷한 곳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사해사본이 증명한 것, 그리고 아직 남은 질문

    1947년, 이스라엘 쿰란 유적지의 황량한 사막 동굴에서 기원전 1세기로 추정되는 성경 사본이 발견됩니다. 바로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입니다. 사해사본이란 사해 인근 쿰란 지역의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 유대 문서들로, 현재까지 알려진 구약 성경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학계에서 "원자폭탄 같은 발견"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까지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공인받던 것은 마소라 사본이었는데, 마소라 사본이란 기원후 약 1000년경 유대 학자 집단인 마소라(Masorah)가 완성한 히브리어 성경 사본을 말합니다. 사해사본은 이보다 무려 천 년이나 앞서 쓰인 문서였고, 비교 결과 이사야서를 비롯한 주요 내용이 현재 우리가 읽는 성경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이 발견은 성경 텍스트의 신뢰성 논쟁에서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천 년의 시차가 있는 두 사본이 내용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수천 년에 걸친 필사 과정이 얼마나 엄격하게 통제됐는지를 방증합니다. 현재 레닌그라드 코덱스(Leningrad Codex)는 구약 성경 전체를 담은 마소라 사본 중 가장 완전하고 정교한 사본으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히브리어 성경 연구의 기준 텍스트로 활용되고 있습니다(출처: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다만 제가 솔직하게 보기엔, 이 부분에서 균형 잡힌 시각도 필요합니다. 사본 간에 전혀 차이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약의 경우 그리스어 사본만 5,800여 개, 라틴어 사본 1만여 개 등 3만 개 이상의 사본이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이 100%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사본 간 차이를 비교·분석하는 학문을 텍스트 비평(Textual Criticism)이라 하는데, 텍스트 비평이란 여러 사본의 차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원본에 가장 가까운 텍스트를 복원하려는 문헌학적 방법론을 말합니다. 이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성경이 "완성된 책"이 아니라 여전히 연구 중인 문서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정경화 과정, 어떤 책은 들어가고 어떤 책은 빠졌나

    구약 39권이 공식 정경으로 확정된 것은 기원후 90년 얌니아 종교 회의에서였습니다. 정경화(Canonization)란 수많은 종교 문서 중 공식적으로 권위 있는 경전으로 인정받는 책의 목록을 확정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신약 27권은 이보다 300년 뒤인 397년 카르타고 종교 회의에서 최종 확정됩니다.

    여기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정경 선정의 기준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사도성(사도와의 연관성), 고대성(얼마나 오래된 문서인가), 보편성(얼마나 많은 공동체가 받아들였는가) 등이 거론됐지만, 이 기준들을 일관되게 적용하면 설명이 안 되는 사례들이 생깁니다.

    정경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주요 역설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사도가 직접 쓰지 않았음에도 정경에 포함됐습니다.
    • 도마복음은 당시 광범위하게 읽혔지만 정경에서 제외됐습니다.
    • 베드로서는 사도성이 인정됐음에도 일부가 정경 바깥에 남겨졌습니다.
    • 2세기 문서로 추정되는 일부 목회 서신은 포함된 반면, 1세기 문서로 보이는 클레멘 서신은 빠졌습니다.

    이 역설들은 정경화가 단순히 신학적 기준만으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당시 교회 공동체의 정치적 역학, 특정 신학적 노선과의 일치 여부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성경을 종교 서적으로 보든 역사 문서로 보든 간에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지점입니다.

    성경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진짜 이유

    성경이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것은 단지 내용이 훌륭해서만은 아닙니다. 언어 전략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현지 언어를 쓰게 됐지만, 토라만큼은 반드시 히브리어로 읽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어를 모르는 세대를 위해 모음 기호와 칸타레이션(Cantillation)을 개발했습니다. 칸타레이션이란 성경 본문에 붙이는 음악적 강세 기호로, 히브리어 텍스트를 노래처럼 읽게 함으로써 암기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노래 가사는 그냥 외우는 것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건 누구나 경험으로 압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도 그 원리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또 하나는 번역의 힘입니다. 기원전 3세기경 히브리어 토라를 그리스어로 옮긴 칠십인역(Septuagint)이 등장하면서, 성경은 유대 공동체 바깥으로 빠르게 확산됩니다. 칠십 인 역이란 70명의 학자가 번역했다는 전통에서 이름을 따온 그리스어 구약 성경으로,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통용되던 지중해 세계 전역에서 읽혔습니다. 사도 바울이 언어 장벽 없이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번역본이 있습니다(출처: 옥스퍼드 성경 연구소).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성경의 확산이 단지 신앙의 힘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언어 정책, 암기 전략, 번역이라는 매우 실용적인 수단들과 맞물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장례식장이나 종교의식을 볼 때 겉으로는 형식처럼 보여도 그 안에 공동체가 가치를 지키려는 치밀한 노력이 있다는 느낌, 성경의 역사를 보면서도 똑같이 받았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거쳐 지금 우리 손에 있는 성경은, 어느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닙니다. 필사자의 4~5년, 공동체의 금식, 학자들의 텍스트 비평, 종교 회의의 논쟁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입니다. 신앙인이든 아니든,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이 무엇을 왜 지키려 했는지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성경에 관심이 생겼다면, 사해사본 관련 학술 자료나 레닌그라드 코덱스 원문 이미지를 직접 찾아보는 것도 꽤 인상적인 경험이 될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0bYXVyFwv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