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앞에서 감동을 못 받아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분명히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오래된 돌덩어리 앞에 서서 "이게 다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돌 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나면, 같은 공간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페트라, 예루살렘, 랄리벨라. 이 세 곳은 그 변화를 제일 극적으로 느끼게 해 준 장소들입니다.

바위를 깎아 신에게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
요르단의 페트라는 기원전 1세기 나바텐족(Nabataean)이 건설한 도시입니다. 나바텐족이란 아라비아 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상인 민족으로, 당시 지중해와 아라비아를 잇는 주요 교역로를 장악했던 집단입니다. 그들이 남긴 알카즈넷(Al-Khazneh)은 수직 절벽을 통째로 깎아 만든 건축물로,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이집트 여신 이시스(Isis) 신앙, 장례 의식, 천문학적 방위까지 복합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제가 직접 비슷한 규모의 석굴 유적에 들어가 봤을 때, 처음에는 그 규모 자체에만 압도됐습니다. 그런데 안에 새겨진 문양 하나하나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담은 상징체계라는 걸 알고 나서야, 그 공간이 단순한 무덤이 아닌 우주론(cosmology)의 표현임을 느꼈습니다. 우주론이란 인간이 세계와 신, 죽음과 삶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구축한 체계적인 사상입니다.
페트라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절벽 곳곳에 뚫린 무덤의 문들입니다. 그 문들 안쪽에 나바텐족 망자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장례 잔치를 벌였습니다.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고 또 다른 시작으로 여겼던 흔적이 돌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페트라가 2,0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무도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협곡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건축적 입지 선정(site selection)과 지형 활용이 유적 보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요르단 관광청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요르단 관광청).
같은 땅을 두고 싸우는 세 종교의 현실
예루살렘 신전산(Temple Mount)은 제가 이 주제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가장 불편하게 느낀 장소입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이곳을 성스럽다고 주장하는데, 그 믿음이 아름다운 유산을 낳은 동시에 끝없는 분쟁의 씨앗도 되었습니다.
통곡의 벽(Western Wall)은 솔로몬 신전(Solomon's Temple)의 서쪽 외벽 잔해입니다. 솔로몬 신전이란 기원전 약 10세기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신의 계시에 따라 지은 신전으로, 성궤(Ark of the Covenant)가 보관되었다고 전해지는 장소입니다. 기원전 587년경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Nebuchadnezzar)에 의해 파괴되면서 성궤의 행방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7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이 이 땅을 장악하고 그 위에 바위 사원(Dome of the Rock)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장소 위에 서로 다른 신앙의 건축물이 겹쳐 쌓이는 현상을 종교적 성층화(religious stratification)라고 합니다. 종교적 성층화란 동일한 공간에 서로 다른 시대의 종교 권력이 차례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역사적 현상을 뜻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래된 종교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신전산을 둘러싼 관할권 분쟁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와닿습니다. 신전산 정상부는 팔레스타인 이슬람 재단인 와크프(Waqf)가 관리하지만, 궁극적인 지배권은 이스라엘이 갖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198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이 분쟁 지역의 복잡성을 공식 기록으로 남겼습니다(출처: UNESCO 세계문화유산).
이 장면을 보며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성스러운 장소일수록 "누가 차지하느냐"보다 "어떻게 함께 존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게 현실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알지만, 그게 더 본질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에티오피아 랄리벨라, 신앙이 공동체를 만든 방식
에티오피아의 아쿠숨(Aksum)과 랄리벨라(Lalibela)는 성궤 전설의 종착지입니다.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메네릭(Menelik)이 성궤를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아쿠숨에서 시작되고, 약 850년 전 랄리벨라 왕이 이곳을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선언하면서 화산암을 통째로 깎아낸 교회군(rock-hewn churches)을 건설했습니다.
랄리벨라의 베타 기요르기스(Bete Giyorgis) 교회는 지상에서 파 내려간 형태의 단일 암석 건축물입니다. 암석 교회(rock-hewn church)란 외부에서 재료를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거대한 암반을 위에서 아래로 조각해 내어 만든 건축 방식을 말합니다. 여기서 제가 감탄한 건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단단한 바위를 깎아 교회를 만든다는 결정 자체가, 신앙이 기술과 노동과 시간을 얼마나 집요하게 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소는 사진으로 먼저 보면 오히려 실망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서서 벽을 손으로 짚어보면, 이게 기계가 아니라 사람 손으로 정(鑿)을 쥐고 한 조각씩 만들어낸 것이라는 게 실감이 납니다. 그 육체적 수고가 신앙의 물리적 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들면, 공간 자체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랄리벨라 십자가(Lalibela Cross)는 12세기경 만들어진 순금 십자가로, 에티오피아의 국보급 성유물입니다. 1997년 도난당했다가 되돌아온 이 십자가는 매년 9월 26일 메스켈 축제(Meskel Festival) 때 공개 행렬에 등장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접하며 느낀 건 성유물 자체의 가치보다, 그것을 지키려는 공동체의 기억과 자부심이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주목할 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쿠숨의 오벨리스크(Obelisk)는 높이 21~32m 규모의 화강암 첨탑으로, 고대 왕실 묘역을 표시하는 상징물입니다.
- 데브리 다모(Debre Damo) 수도원에는 1,500년 이상 된 채색 필사본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 랄리벨라의 11개 암석 교회는 미로 같은 지하 터널로 연결되어 있으며, 두 개의 건물군이 각각 지상의 예루살렘과 천상의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에티오피아 기독교는 고대 이교 신앙과 유대교적 전통을 흡수하면서 고유한 신앙 체계를 형성했습니다. 태양 상징이 교회 건축에 새겨지고, 성궤 복제품이 모든 교회의 가장 거룩한 자리에 보관되는 방식은 단순한 종교 혼합이 아니라 문화적 연속성(cultural continuity)의 증거입니다.
결국 이 여정에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진짜 신성함은 돌이나 금속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더 평화롭고 겸손해지는 데 있어야 한다는 것. 페트라의 절벽 무덤도,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도, 랄리벨라의 암석 교회도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믿음은 돌보다 오래가지만, 그 믿음이 사람을 해치는 도구가 되는 순간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도 결국 믿음 자체라는 것을. 이 장소들을 언젠가 직접 가보고 싶다면, 먼저 그곳에 담긴 이야기부터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가장 정확히 들어맞는 곳들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AQYluEKPBk&list=PLKjlFOzVx8goeWSr5qrhN_YBf_XNzwjx3&inde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