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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하늘에 있을까요?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황당하다고 느꼈습니다. 당연히 있지,라고 바로 대답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평생을 두고 싸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양자역학이 말하는 세계는 우리의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런데 틀린 건 우리의 상식 쪽이었습니다.

    양자역학 관련 사진
    양자역학 관련 사진

    빛이 파동인가 입자인가, 그 싸움이 남긴 것

    17세기부터 과학자들은 빛의 본질을 두고 격렬하게 논쟁했습니다. 뉴턴은 빛이 작은 알갱이, 즉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고, 그의 권위 덕분에 이 입자설은 한동안 정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초 토마스 영이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빛이 파동의 특성인 간섭무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판세가 뒤집혔습니다.

    여기서 이중 슬릿 실험이란 두 개의 좁은 구멍이 뚫린 판에 빛을 통과시키는 실험입니다. 만약 빛이 입자라면 구멍 두 개를 통과한 빛이 스크린에 두 줄의 띠만 만들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여러 줄의 간섭 무늬가 나타났습니다. 파동이 서로 겹쳐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현상, 즉 간섭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죠.

    그러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 논문에서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일 수 있다는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파동-입자 이중성이란 하나의 물체가 상황에 따라 입자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파동처럼 행동하기도 하는 성질을 가리킵니다. 이 논문으로 아인슈타인은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출처: 노벨위원회).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납득하기 어려웠던 게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입자면 입자고 파동이면 파동이지, 어떻게 둘 다라는 말이 가능한지. 나중에야 이게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머릿속에 뭔가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이 개념은 이후 드 브로이의 물질파(matter wave) 이론으로 확장됩니다. 물질파란 빛뿐 아니라 전자 같은 물질 입자도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는 이론입니다. 1927년 데이비슨과 거머가 전자를 이중 슬릿에 통과시켜 간섭무늬를 실제로 관측함으로써 이 이론을 실험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측정할 수 없다는 게 핑계가 아닌 이유

    물질이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면 그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하이젠베르크는 '그럴 수 없다'고 답했고, 그 답이 바로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입니다. 불확정성 원리란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수록 운동량(속도와 질량의 곱)이 불확실해지고, 반대로 운동량을 정확히 알수록 위치가 흐릿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관측 장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미시세계의 본질적인 특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맞서 하이젠베르크는 행렬 역학(matrix mechanics)을 발표했고, 슈뢰딩거는 같은 현상을 파동 방정식으로 표현했습니다. 두 방식은 전제도 수학적 접근법도 달랐지만, 계산 결과는 동일하게 나왔습니다. 결국 보어는 둘 다 맞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것이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환자를 처음 만났을 때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단순 복통처럼 보이는데, 막상 활력징후를 재고 병력을 확인하면 전혀 다른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미 정해져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인지, '측정하는 행위 자체가 상태를 바꾸는 것'인지는 임상에서도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불확정성 원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관측 장비가 발달하면 언젠가는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는 1927년 제5차 솔베이 회의와 1930년 제6차 솔베이 회의에서 정교한 사고 실험을 들고 나와 양자역학을 공격했지만, 닐스 보어가 매번 이를 반박했습니다. 특히 제6차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상자 속의 시계' 실험은 보어조차 며칠 동안 답을 찾지 못할 만큼 날카로운 것이었지만, 결국 보어는 아인슈타인 본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근거로 그 허점을 찾아냈습니다.

    양자역학의 핵심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파동-입자 이중성: 빛과 전자는 상황에 따라 입자로도, 파동으로도 행동한다
    • 불확정성 원리: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 양자 중첩: 관측하기 전까지 입자는 여러 상태가 겹쳐 있는 중첩 상태로 존재한다
    • 양자 얽힘: 한번 상호작용한 두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즉시 정보를 주고받는 것처럼 행동한다

    코펜하겐 해석이 이긴 것이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하려고 고안된 사고 실험입니다. 상자 속에서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면 독이 든 병이 깨지고 고양이가 죽는 장치를 만들었을 때, 코펜하겐 해석대로라면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상태, 즉 중첩(superposition)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첩이란 관측 전에 입자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슈뢰딩거는 이 논리가 거시세계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펜하겐 학파는 오히려 이 실험이 양자역학의 핵심을 완벽하게 설명해 준다며 환영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비판하려고 만든 사고 실험이 오히려 상대를 도와준다는 상황이 묘하게 인간적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35년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EPR 역설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양자 얽힘 현상을 비판했습니다. 서로 얽힌 두 입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을 측정하는 순간 다른 쪽 상태가 즉시 결정된다는 것은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을 의미하므로, 자신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위배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숨은 변수(hidden variable)가 존재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숨은 변수란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결정론적 규칙이 있어서, 겉보기에만 확률적으로 보일 뿐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개념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아인슈타인의 직관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가 끝까지 싸운 이유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세상이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기술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었고, 그건 나름대로 진지한 과학적 태도였으니까요. 다만 1964년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이 벨 부등식(Bell's inequality)을 고안했고, 1982년 알랭 아스페가 이를 실험으로 검증하여 숨은 변수 이론은 실험적으로 반박되었습니다(출처: Physical Review Letters). 벨 부등식이란 숨은 변수가 존재한다면 반드시 성립해야 하는 수학적 조건을 담은 식인데, 실험 결과 이 부등식이 깨졌습니다. 다시 말해 양자 얽힘은 실제로 존재하며, 아인슈타인의 숨은 변수 이론은 맞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공부하면서 느낀 건 코펜하겐 해석이 '이겼다'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세계 해석, 앙상블 해석, 서울 해석 등 다양한 대안적 해석들이 여전히 연구되고 있고, 각각 코펜하겐 해석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메우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정답이 확정되는 순간이 아니라, 기존의 확신이 깨지는 순간에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결국 양자역학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어렵고 복잡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위치, 속도, 존재, 관측이라는 개념들이 사실 훨씬 불안정하고 복잡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어떤 분야든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순간부터 진짜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양자역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달이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존재하는지, 다음번에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3Pt4n85u-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