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게는 최소 네 명의 형제와 두 명의 이복누이가 있었다는 고대 문서 기록이 존재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꽤 오래 멍하니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수를 고독하게 고난을 감당한 외로운 존재로만 그려왔는데, 시끌벅적한 대가족 안에서 자란 한 사람이었다는 게 갑자기 실감 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복음서가 말한 형제들의 이름
마르코 복음서 6장에는 예수의 형제들 이름이 직접 등장합니다.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 그리고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라는 구절까지 나옵니다. 외아들이라는 통념과는 정반대의 내용입니다.
성서 비평학(Biblical criticism)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습니다. 여기서 성서 비평학이란 고대 문서를 그 기록 당시의 역사적·문화적 맥락 안에서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신앙의 영역과 별개로 텍스트를 객관적으로 읽어내는 작업입니다. 이 방법론으로 복음서를 다시 들여다보면, 형제들의 이름 목록이 단순한 언급이 아니라 당시 독자들에게 이미 알려진 실존 인물들을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건 이름의 구조였습니다. 야고보와 요셉은 이스라엘 선조들의 이름에서 따온 족장계 이름이고, 시몬과 유다는 로마에 맞서 싸운 마카베오 전쟁의 영웅들에서 딴 저항적 이름입니다. 성서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대조적인 두 종류의 이름이 한 집안에 공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형제들이 서로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정황 증거로 해석됩니다. 어머니가 다르니 이름을 짓는 시대 감각도 달랐다는 논리입니다.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야고보, 요셉: 이스라엘 족장 이름 계열 → 요셉 전처 소생 추정
- 시몬, 유다: 마카베오 저항 영웅 이름 계열 → 마리아 소생 추정
- 예수: 여호수아에서 파생된 이름 → 마리아 소생 추정
요셉의 전처와 이복누이 살로메
2세기 고대 문서인 야고보의 원복음서(Protevangelium of James)에는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베들레헴 출산 장면에 함께 있었던 살로메라는 소녀입니다. 여기서 원복음서란 정경(正經)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 문서로,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유통되던 예수 탄생 관련 서술을 담고 있습니다. 1902년 이집트에서 발굴된 고대 시리아 사본이 그 실물입니다.
살로메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원복음서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서 주석학자들이 주목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당시 저자들은 독자가 이미 관계를 알고 있는 인물에 대해선 부연 설명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부연이 없다는 건 오히려 친밀한 관계였을 가능성을 뜻합니다. 3세기 교회 역사가 히에로니무스의 기록에는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 멜케 혹은 에스카라는 이름의 전처와 살았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요셉이 재혼한 남성이었다면, 살로메는 그 전처 소생의 딸, 즉 예수의 이복누이였다는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솔직히 이 부분이 처음엔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주변에서도 이런 가족 구조를 꽤 봤습니다. 재혼가정에서 아이들이 뒤섞여 자라는 건 지금도 흔한 일이고, 안에서 보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서운함이 뒤엉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2천 년 전이라고 달랐을 리 없습니다.
두 번째 누이의 이름에 대해서는 4세기 에피파니우스의 저술에 마리아 혹은 미리엄이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1세기 유골함(ossuaries) 연구에서도 당시 유대 여성 이름의 절반 가까이가 미리엄 혹은 마리아였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유골함이란 유대인들이 유골을 수습해 담아두던 석회암 용기로, 비문이 새겨진 경우 당시 이름 분포를 파악하는 1차 사료로 활용됩니다. 고고학적 맥락에서 보면 예수의 둘째 이복누이가 미리엄이었을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상당히 높습니다(출처: 이스라엘 고대유물청).
세례자 요한과의 혈연 관계
루가(누가) 복음서에는 마리아가 임신한 몸으로 나자렛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유대 남부 지역까지 엘리사벳을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친척 사이였다고 루가는 전합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이 낳은 아들이 훗날 예수에게 세례를 준 세례자 요한입니다.
족보학(genealogy)에서 방계 혈족 추적은 직계만큼 중요합니다. 족보학이란 가족 관계와 혈통을 역사 기록, 구전, 물적 증거를 통해 체계적으로 추적하는 학문입니다. 루가 복음서가 기록된 시점에는 예수 가족 구성원 일부가 아직 생존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허위 혈연관계를 기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대 독자들이 사실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제 머릿속에도 오래도록 세례자 요한은 예수와는 별개의 독립된 인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촌 형제 사이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류하며 비슷한 세계관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생기고, 요한이 예수를 세례 받을 자로 인정한 장면도 단순한 종교적 사건을 넘어 가족 안에서 오래 쌓아온 신뢰가 배경에 있었을 수 있습니다. 이 해석이 성립하면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 자체가 어느 정도 가족 네트워크 위에서 시작됐다는 그림이 만들어집니다(출처: 성서고고학회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아버지의 부재와 이복형제들 사이의 갈등
요셉은 예수가 열두 살 무렵 기록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학자들은 요셉이 마리아와 혼인할 당시 이미 나이가 많았던 점을 근거로 자연사를 추정합니다. 가장의 죽음은 가족 전체의 역학을 바꿉니다.
장자 상속권(primogenitur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이 장자 상속권이란 맏아들이 부친 재산의 두 배를 상속받고 가장의 역할을 이어받는 법적 관습을 가리킵니다. 야고보가 그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도 어떤 의미에서 장남 지위를 주장할 수 있는 복잡한 상황이었다는 점입니다. 야고보는 전처 소생의 첫째이고, 예수는 마리아 소생의 첫째였습니다.
저는 이 구조가 지금 우리 주변 재혼가정의 갈등과 거의 똑같다고 느꼈습니다. 누가 진짜 장남인가를 둘러싼 미묘한 긴장감, 인정받고 싶은 욕구, 책임을 누가 떠안느냐의 문제.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안에서는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그 감각 말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예수를 둘러싼 출생 관련 소문이 어릴 때부터 공동체 안에 퍼져 있었습니다. 요한 복음서에는 군중들이 예수에게 "우리는 음란한 데서 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예수에 대한 반어적 비방이었습니다. 혼전 임신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도 돌았을 것이고, 예수 자신이 어린 시절 그 놀림의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환경이 오히려 예수가 사회로부터 배척당하는 자들,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자들에게 특별히 가까이 다가간 이유를 설명해 주는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잃은 열두 살 아이, 이복형제들 사이의 서열 다툼, 출생을 둘러싼 낙인. 이 조각들을 모아보면 예수의 위대함이 아무 상처 없는 환경에서 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게 점점 분명해집니다.
정리하면, 예수의 가족은 요셉의 전처 소생 이복형제자매와 마리아 소생 친형제들이 한 지붕 아래 뒤섞인 복합 가정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는 사촌 형제였을 가능성이 높고,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은 이 가족 네트워크가 중심축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신앙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예수라는 인물을 훨씬 더 선명하게 이해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그의 말과 행동이 어떤 개인적 상처와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알면, 단순한 교리 너머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수의 가족사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마르코 복음서 6장부터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DblkpC_E_Q&list=PLKjlFOzVx8go02f5oBb8KVIhysqqGHhCt&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