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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너구리를 처음 발견한 영국 해군 장교가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본국에 보냈을 때, 과학자들은 사기라고 단정했습니다. 비버 몸통에 오리 부리, 물갈퀴까지 달린 생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거죠. 솔직히 저도 처음 이 동물을 봤을 때 "이게 진짜 동물이 맞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이없어 보이는 생김새 뒤에는, 1억 6천만 년의 진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오리너구리 사진
    오리너구리 사진

    알을 낳는 포유류, 단공류의 진화 역사

    오리너구리가 왜 그렇게 어중간해 보이는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그 답은 약 3억 4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물에서 육지로 처음 올라온 척추동물들은 알이 건조해지는 걸 막기 위해 껍질로 둘러싸인 양막란(amniotic egg)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양막란이란 배아가 수분을 잃지 않도록 보호하는 막과 껍질로 감싸진 알을 말합니다. 이들은 페름기를 거치면서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한쪽은 파충류와 조류가, 다른 한쪽은 포유류 계통인 단공류(monotreme)로 분화했습니다. 단공류란 알을 낳으면서도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포유류 분류군으로, 현존하는 종은 오리너구리 1종과 가시두더지 4종, 총 5종에 불과합니다.

    약 1억 4천800만 년 전, 이 단공류에서 현재의 포유류 대부분이 갈라져 나왔습니다. 이들은 알 대신 자궁이나 주머니 안에서 새끼를 키우는 방식을 택했죠. 하지만 오리너구리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약 1억 6천6백만 년 전쯤 분기된 단공류의 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겁니다.

    그렇다면 오리너구리는 왜 아직도 알을 낳을까요? 코펜하겐 대학교의 굳이 정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오리너구리는 알 노른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텔로제닌(vitellogenin)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유전자는 새와 뱀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고 밝혔습니다. 비텔로제닌이란 난황 단백질의 전구체로, 알 속 영양분인 노른자를 형성하는 핵심 물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리너구리의 이 유전자 수가 파충류보다 적어서, 알 안에 노른자가 소량밖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국 갓 부화한 새끼는 자력으로 영양을 충당할 수 없어서, 어미가 반드시 젖을 먹여야 합니다. 알을 낳는 동물인데 젖도 먹인다는, 어딘가 어중간해 보이는 특성이 사실은 이렇게 정교하게 연결된 구조였던 겁니다.

    제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조금 멍했습니다. 불완전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서로 맞물려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오리너구리가 꽤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오리너구리의 또 다른 특이점은 뒷발에 달린 박차(spur)에서 나오는 강력한 신경독입니다. 2010년 시드니 대학교 카메론 패팅턴 연구원은 오리너구리 독성 성분과 관련 유전자가 파충류의 것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출처: 시드니 대학교). 즉 이 독성도 파충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형질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대부분의 포유류가 진화 과정에서 독을 잃어버린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 단공류는 현존하는 알을 낳는 포유류로, 오리너구리 1종 + 가시두더지 4종, 총 5종뿐입니다
    • 비텔로제닌 유전자는 새·뱀과 공유하지만, 다른 포유류에는 없는 유전자입니다
    • 신경독 성분이 파충류 유전자와 겹쳐, 독성도 파충류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형질로 추정됩니다
    • 알 속 노른자가 부족해 부화 후 반드시 모유 수유가 필요한 독특한 번식 구조를 가집니다
    요약: 오리너구리는 파충류와 포유류의 유전적 특성을 동시에 지닌 단공류로, 1억 6천만 년 전 분기된 계통이 지금까지 이어진 살아있는 진화의 증거입니다.

     

    경쟁에서 밀려난 자리, 물속에서 찾은 생존전략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이렇게 원시적인 특징을 가진 동물이 어떻게 멸종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까요?

    백악기 전기까지만 해도 오리너구리 조상들은 호주와 남미 일대에 꽤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당시 호주 강가에는 몸길이 5m에 달했던 거대 양서류 콜로소케팔레(Koolasuchus)가 서식했고, 오리너구리 조상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했습니다. 신생대에 접어들면서는 지금의 오리너구리보다 2.5배나 큰 거대 오리너구리와 몸길이 1m짜리 가시두더지도 등장했습니다. 단공류 나름대로 다양한 방향으로 생태적 지위를 채워 나갔던 거죠.

    그런데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유대류(marsupial)입니다. 유대류란 새끼를 자궁 밖 주머니(육아낭) 안에서 키우는 포유류 분류군으로, 캥거루와 코알라가 대표적입니다. 2009년 생태학자 매트 필드는 약 7천만 년 전 남아메리카에서 유대류 조상들이 남극 대륙을 경유해 호주로 건너왔고, 빠른 번식력과 육상 적응력을 바탕으로 서식지를 빠르게 확장해 나갔다고 주장했습니다. 단공류 상당수가 이 경쟁에서 밀려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오리너구리가 선택한 방식이었습니다. 유대류는 주머니 안에서 새끼를 키우기 때문에, 물속에 들어가면 새끼가 익사할 수 있습니다. 반수생 생활은 유대류에게 사실상 불가능한 전략이었죠. 반면 알로 번식하는 오리너구리에게는 수중 환경이 오히려 안전한 피난처가 된 겁니다.

    이걸 알고 나서 저는 제 경험상 이건 꽤 자주 반복되는 패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류 경쟁에서 밀려난 쪽이 틈새를 발견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더 오래 버티는 경우 말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지 않나요?

    오리너구리의 수중 적응이 얼마나 정교한지는 부리를 보면 바로 확인됩니다. 부리 전체가 뼈가 아닌 부드러운 피부로 덮여 있으며, 표면에 약 7만 개의 작은 구멍이 나 있습니다. 이 구멍 안에는 두 종류의 감각 세포가 있는데, 하나는 물의 미세한 압력 변화를 감지하는 기계적 수용체(mechanoreceptor), 다른 하나는 생물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전기장을 감지하는 전기수용체(electroreceptor)입니다. 전기수용체란 살아있는 생물이 근육을 쓸 때 발생하는 미약한 전기 신호를 탐지하는 감각 세포로, 상어의 로렌치니 기관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오리너구리는 잠수 중 눈을 감아도 이 전기수용체 덕분에 먹이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습니다(출처: Nature).

    그리고 작년에는 오리너구리 털에 자외선을 비추면 녹색 형광 빛을 띠는 현상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이를 생체형광(biofluorescence)이라고 하는데, 자외선을 흡수해 다른 파장의 빛으로 재방출하는 현상입니다. 연구진은 이것이 자외선에 민감한 천적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한 진화적 위장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칙칙한 갈색 털 아래에 이런 생존 장치까지 숨겨져 있을 줄은, 저도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요약: 유대류와의 경쟁에서 밀린 오리너구리는 수중 환경을 틈새로 삼아 살아남았으며, 전기수용체와 생체형광까지 갖춘 정교한 생존 전략의 결과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리너구리가 알을 낳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오리너구리는 파충류처럼 땅을 파고 알을 낳습니다. 다만 부화 후에는 포유류처럼 젖을 먹여 새끼를 키웁니다. 알 안에 노른자 영양분이 충분하지 않아 부화 직후 모유 수유가 반드시 필요한 구조입니다. 이것이 단공류가 포유류로 분류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오리너구리 독은 얼마나 위험한가요?

    A. 수컷 오리너구리의 뒷발 박차에서 분비되는 신경독은 사람에게 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치사량에 이를 정도는 아니지만, 진통제가 잘 듣지 않는 극심한 통증이 수 주간 지속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파충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형질로 추정되며, 대부분의 포유류가 진화 중 잃어버린 특성입니다.

     

    Q. 단공류는 왜 5종밖에 안 남은 건가요?

    A. 약 7천만 년 전 호주에 유입된 유대류와의 경쟁이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유대류는 번식 속도가 빠르고 육상 서식지를 넓게 차지했는데, 단공류 대부분이 이 경쟁에서 밀려 쇠퇴했습니다. 오리너구리는 유대류가 접근하기 어려운 수중 환경으로 자리를 옮겨 살아남은 사례입니다.

     

    Q. 오리너구리 부리가 오리 부리와 다른 점이 있나요?

    A.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새의 부리는 단단한 뼈로 이루어진 반면, 오리너구리의 부리는 부드럽고 탄력 있는 피부로 덮여 있습니다. 더 중요한 차이는 오리너구리 부리에 약 7만 개의 감각 구멍이 있어 기계적 수용체와 전기수용체가 분포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집게가 아니라 고성능 먹이 탐지 기관입니다.

     

    Q. 오리너구리 털에서 형광 빛이 난다는 게 정말인가요?

    A. 맞습니다. 자외선을 비추면 오리너구리 털이 녹색 형광 빛을 띠는 현상이 확인됐습니다. 이를 생체형광이라고 하는데, 일반 가시광선에서는 나타나지 않아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자외선에 민감한 천적을 피하기 위한 위장 전략일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습니다.

     

    결론

    오리너구리를 처음 본 19세기 과학자들이 사기라고 의심했던 장면이 저는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리너구리는 이상한 동물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을 너무 좁은 기준으로 이해해 왔다는 걸 보여주는 동물입니다.

    진화를 '더 완벽해지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버티는 방식을 찾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더 강하거나 더 빠르지 않아도,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으면 1억 년도 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오리너구리가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리너구리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아래 영상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J01NQKSp6k&t=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