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산호초를 그냥 스노클링 명소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예쁘고 색깔 많고, 물고기 많은 곳. 그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미크로네시아 추크섬의 연구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산호초는 과거 기후를 기록한 타임캡슐이자,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가늠하는 기준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한국 해양과학자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산호초 사진
    산호초 사진

    산호초가 기후를 기록한다고요?

    혹시 산호에도 나이테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그냥 돌처럼 생긴 해양 생물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해마다 수온과 염분 차이에 따라 밀도가 다른 층이 쌓이며 성장합니다. 1년에 약 1cm씩 자라는 경산호(hard coral)는 100년이 지나면 약 1m 크기가 됩니다. 여기서 경산호란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외피를 가진 산호를 말하며, 연산호와 달리 뼈대가 석회질로 굳어있어 지질 기록을 보존하는 데 적합합니다.

    추크섬의 한국 해양과학자들이 이 경산호를 직접 시추(drilling)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산호 내부의 층별 탄산칼슘 성분을 분석하면, 그 층이 형성됐던 시기의 해수면 온도를 역추적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고기후(paleoclimate) 연구라고 합니다. 고기후란 기상 관측 기록이 없던 과거의 기후 상태를 지질·생물학적 자료로 복원하는 학문입니다. 쉽게 말해 산호가 타임머신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이 방식으로 엘니뇨(El Niño)와 라니냐(La Niña)의 발생 주기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엘니뇨란 수년 주기로 태평양 적도 해역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으로, 한반도의 이상기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팀이 산호 하나를 채취할 때도 함부로 잘라내지 않고, 작업 후 모래로 상처 부위를 메워주는 모습이 제게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자연에게 조심스럽게 빌려 쓰는 태도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 경산호는 연 1cm 성장, 1m 크기면 약 100년치 기후 기록을 담고 있음
    • 층별 탄산칼슘 분석으로 과거 해수면 온도·엘니뇨·라니냐 주기 복원 가능
    • 추크섬 환초는 지름 40km, 둘레 224k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환초
    • 시추 후 모래로 상처 부위를 메우는 보전 절차를 반드시 이행
    요약: 산호의 나이테를 분석하는 고기후 연구는 과거 수백 년의 기후를 복원하고,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핵심 자료로 쓰입니다.

     

    해양산성화, 플랑크톤이 왜 중요한 거죠?

    주변에 연구직에 있는 지인이 있는데, 한 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연구는 반복이고, 반복은 체력 싸움이야." 그 말이 추크섬 연구팀 이야기를 접하면서 다시 떠올랐습니다. 연구원들은 매일 새벽 6시에 배를 타고 나가 해수 시료를 채취하고, 비가 쏟아지면 잠깐 멈췄다가 다시 바다로 나갑니다. 하루에 두 번씩, 빠짐없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해양산성화(ocean acidification) 때문입니다. 해양산성화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바닷물에 녹아드는 CO₂의 양이 증가하고, 그 결과 해수의 pH가 낮아지는 현상입니다. 산호초 생태계가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데, pH가 낮아질수록 산호의 탄산칼슘 외피 형성이 어려워져 백화현상(bleaching)이 일어납니다. 출처: NOAA(미국 해양대기청)에 따르면 산업화 이후 해수 pH는 약 0.1 낮아졌으며, 이는 수소 이온 농도 기준으로 약 30% 증가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식물성 플랑크톤(phytoplankton)입니다. 식물성 플랑크톤이란 바닷속에 사는 미세한 광합성 생물로, 대기 중 산소의 약 50% 이상을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제가 직접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산소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플랑크톤이 그보다 더 많은 산소를 만든다는 사실은 몰랐거든요. 게다가 자외선이 강해지면 플랑크톤은 황화합물인 DMS(다이메틸설파이드)를 생성합니다. DMS가 대기 중 산소와 결합해 구름의 응결핵이 되어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종의 지구 자동조절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이 매일 시료를 채취하는 이유는 바로 이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쌓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측정값 하나가 50년 뒤 산호 생존 가능성을 예측하는 근거가 됩니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쌓이는 데이터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요약: 해양산성화로 위협받는 산호초 생태계를 이해하려면 식물성 플랑크톤의 변화를 장기적으로 추적하는 데이터 축적이 필수입니다.

     

    과학자들의 하루가 이렇게 험할 줄은 몰랐습니다

    연구원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해양학인 줄 알았으면 선택 안 한 사람이 태반일 겁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반쯤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추크섬 연구팀은 수심 10m 아래에 고정식 데이터 장비인 CTD(수온·염분·압력 측정 장치)를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교체합니다. CTD란 수온(Conductivity), 수심(Temperature), 압력(Depth)을 동시에 측정하는 해양 관측 장비로, 해수 환경을 정밀하게 파악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문제는 그 작업을 하는 도중에 상어가 출몰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접했을 때, 바다 밑으로 바싹 몸을 낮추는 다이버들의 움직임이 연구의 낭만 같은 건 없다는 걸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추크섬의 기후도 만만치 않습니다. 연중 기온은 30도 이상을 유지하고, 하루에 두세 번 갑작스러운 스콜(squall)이 내립니다. 스콜이란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단시간의 강렬한 폭우로, 10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집니다. 바다에서 채취를 마치고 돌아와도 연구실 작업이 기다립니다. 시약병 하나하나에 해수를 옮겨 담고, 수온·pH·염분 수치를 기록하고, 실험을 반복하는 일. 그 실험이 실패를 거듭해도 기록은 멈추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일은 결과보다 과정이 훨씬 더 고됩니다. 그리고 그게 진짜 연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추크섬 연구는 상어 출몰, 극한 더위, 반복 실험의 연속으로, 현장 데이터 확보가 연구 성패를 결정하는 치열한 과정입니다.

     

    흑진주 양식, 자연을 이용하는 걸까요 함께 사는 걸까요?

    한국 해양연구센터가 추크섬에서 기초과학만 하는 건 아닙니다. 흑진주(black pearl) 양식 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부분을 접했을 때 저는 조금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산호초 보전을 연구하는 곳에서 상업적 양식을 병행하는 게 맞는 방향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 나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흑진주의 원료가 되는 흑접 조개는 수온과 염분 변화에 극도로 민감한 생물입니다. 깨끗한 산호초 생태계에서만 서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조개가 잘 자란다는 것 자체가 산호초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타이티에서는 18~24개월이 걸려야 상품 가치가 생기는 흑진주가 추크섬에서는 12개월이면 충분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맹그로브(mangrove) 생태계가 제공하는 풍부한 영양 환경 덕분입니다. 출처: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에 따르면 맹그로브 숲은 육지 유기물을 정화해 인근 해양 생태계의 생산성을 높이는 완충 역할을 합니다.

    미크로네시아 현지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이 3~4만 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지름 10mm짜리 흑진주 한 알에 40~50만 원의 가격이 형성되는 이 사업은 현지 경제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이런 생각을 합니다. 경제적 성과가 커질수록 산호초 보전이 항상 먼저여야 한다는 원칙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이 생태계가 계속 살아남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스피롤리나(spirulina)를 비롯한 미세조류 기반 신약 연구도 같은 맥락입니다. 스피롤리나는 30억 년 전부터 존재해 온 남조류(cyanobacteria)로, 인체 필수 영양소 수만 종이 농축된 슈퍼푸드이자 NASA가 우주식품으로 채택한 미세조류입니다. 산호초 생태계를 보전하는 일 자체가 미래의 자원을 지키는 일이라는 연결고리가 여기서 완성됩니다.

    요약: 흑진주 양식과 미세조류 연구는 산호초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현지 경제를 함께 살리는 방향을 모색하는 실용 과학의 사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추크섬 산호초가 세계에서 특별한 이유가 뭔가요?

    A. 추크섬의 환초는 지름 약 40km, 둘레 224k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환초입니다. 화산이 침강한 자리에 산호초만 남은 형태로, 수천 종의 어류와 수만 종의 해조류가 공존하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입니다. 크기도 크기지만 연구가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진 지역이라는 점에서 과학적 가치가 더욱 높습니다.

     

    Q. 해양산성화가 심해지면 산호초는 어떻게 되나요?

    A. 해수 pH가 낮아질수록 산호가 탄산칼슘으로 외피를 만드는 능력이 저하되어 백화현상이 나타납니다. 백화현상이 지속되면 산호초가 죽고, 이를 터전으로 삼는 수천 종의 생물도 사라집니다. 연구팀은 현재 데이터를 축적해 앞으로 50년, 100년 뒤 산호가 생존 가능한지를 예측하는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추크섬에서 흑진주 양식이 잘 되는 이유가 뭔가요?

    A. 추크섬은 맹그로브 생태계가 공급하는 풍부한 영양 물질과 산호초가 유지하는 안정적인 수온 환경 덕분에 흑접 조개의 성장 속도가 타 지역보다 월등히 빠릅니다. 타이티에서 18~24개월 걸리는 상품화 기간이 이곳에서는 12개월로 단축됩니다. 깨끗한 산호초 생태계가 그대로 양식 환경의 경쟁력이 되는 셈입니다.

     

    Q. 한국 해양연구센터가 왜 하필 추크섬에 자리를 잡은 건가요?

    A. 추크섬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환초를 갖고 있으면서도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입니다. 미크로네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300만 km²에 달하는 광대한 해양 자원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 강제징용 역사를 공유한 영향으로 현지 주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거점 확보가 가능했습니다.

     

    결론

    이 이야기를 다 접하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문장은 연구원의 말이었습니다. "또 들어가면 한숨 푹 쉬면서 편해집니다. 아, 여기 또 왔구나." 고된 환경인데 돌아오면 편해진다는 역설이, 어떤 설명보다도 이 사람들이 왜 여기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산호초는 단순한 해양 생물이 아닙니다. 지구의 기후를 기록하고, 산소를 생산하고, 수많은 생물의 터전이 되는 생태계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그 산호초가 지금 해양산성화와 기후변화라는 이중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 해양과학자들이 매일 새벽 바다로 나가 데이터를 쌓는 이유는 그 위협의 속도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입니다. 바다를 정복하는 과학이 아니라, 바다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과학입니다. 산호초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그 다음 질문은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3k0BH0fsYe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