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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다큐를 보면서 하마를 그냥 물속에 둥둥 떠 있는 둔한 동물이라고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과 잠비아 루앙와 강을 배경으로 한 내용을 보다 보니, 하마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동물이었습니다. 영역 본능, 공생 관계, 건기 생존 방식까지 —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는 강가가 사실은 끊임없는 생존 경쟁의 무대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하마의 영역 본능과 강 속 공생 관계
일반적으로 하마는 순하고 느린 초식동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꽤 많이 틀린 인상입니다. 수컷 하마는 강의 약 90m 구간을 자신의 텃세권(Home Range)으로 설정하고, 이 범위 안에 10~15마리의 암컷과 새끼를 거느립니다. 여기서 텃세권이란 한 개체가 먹이·번식·휴식을 위해 독점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건기처럼 물이 줄어드는 시기엔 여러 수컷의 텃세권이 겹치면서 충돌이 불가피해집니다.
수컷 하마끼리 충돌할 때 가장 먼저 쓰는 신호가 과시행동(Display Behavior)입니다. 과시행동이란 실제로 싸우기 전에 입을 크게 벌려 상대를 위협하는 행위로, 상대가 스스로 물러나도록 유도하는 방어적 전술입니다. 이 행동이 효과가 없을 때 비로소 몸싸움이 시작되는데, 최대 2.7톤에 달하는 몸무게와 50cm 가까이 자라는 송곳니가 충돌하면 그 파괴력은 상당합니다. 실제로 싸움 도중 새끼 하마가 무리에 밟혀 죽는 장면을 보았을 때, 저는 꽤 오래 그 장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나 집단 안에서도 힘센 존재들의 충돌이 아무 힘이 없는 약자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간다는 것 — 자연이 인간 사회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습니다.
한편 하마의 삶에는 놀라운 공생 관계도 존재합니다. 아프리카 잉어류의 일종인 물고기들이 하마의 입안 깊숙이 헤엄쳐 들어가 잇몸과 치아 사이의 음식 찌꺼기를 청소해 줍니다. 소등쪼기새(Oxpecker)는 하마의 귀지와 진드기를 제거하고 상처 부위를 관리해 줍니다. 여기서 소등쪼기새란 대형 포유류의 외부 기생충을 먹이로 삼아 살아가는 새로, 숙주에게 청결 관리를 제공하는 상리공생(Mutualism)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다만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 전에 계속 쪼아대는 습성 때문에 하마에게 불편을 주기도 한다는 점은 — 이들이 조력자이면서 동시에 기생충 같은 존재라는 묘한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신기했던 건, 하마가 그걸 알면서도 크게 귀찮지 않으면 내버려 둔다는 점이었습니다.
- 수컷 하마는 강의 약 90m 구간을 텃세권으로 설정하며, 건기에 영역이 겹치면 수컷 간 충돌이 발생한다
- 과시행동(입을 크게 벌리는 위협)이 효과 없을 경우 몸싸움으로 이어지며, 이 과정에서 새끼 하마가 희생되기도 한다
- 물고기와 소등쪼기새는 하마의 청결을 돕는 공생 파트너이지만, 상처 회복을 방해하는 양면성도 지닌다
- 하마는 유전자 분석 결과 고래와 가장 가까운 친척 관계로, 물속에서 초음파로 소통하는 능력을 공유한다(출처: National Geographic)
건기 생존 전략 — 루앙와 강의 하마들
잠비아 루앙와 강의 9월은 건기(Dry Season)의 절정입니다. 건기란 강수량이 현저히 줄어드는 시기로, 이 지역에서는 섭씨 40도를 넘는 기온이 이어지며 강물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일반적으로 하마는 더위를 잘 버틸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하마의 피부는 털이 거의 없고 자외선에 극도로 민감해서, 장시간 햇볕에 노출되면 피부가 갈라지고 손상됩니다.
하마가 더위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입니다. 하마는 잠을 잘 때도 3분에 한 번씩 수면 위로 떠올라 숨을 쉬어야 하는데, 다 자란 하마는 최대 6분까지 수중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봤을 때 가장 신기했던 건, 어미 하마 등 위에서 새끼가 잠을 자는 장면이었습니다. 새끼는 물에 뜬 어미 등 위에 올라타 쉬면서 숨을 쉬기 위해 매번 수면으로 올라올 필요가 없게 됩니다. 단순한 귀여운 장면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건기에 루앙와 강 주변의 기온이 40도까지 오르면 약 4만 마리의 하마가 점점 좁아지는 수원지로 밀집하게 됩니다. 물이 줄어들수록 먹이도 부족해지는데, 이때 일부 하마는 다른 하마의 배설물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영양을 보충합니다. 하마의 소화 효율은 뛰어나지만 배설물에도 상당한 영양소가 남아 있어, 절박한 건기에는 이것이 생존 수단이 됩니다. 또한 하마의 배설물(약 20kg/일)은 강에 영양분을 공급해 수초와 물고기, 곤충의 생장을 돕는 생태계 순환 역할도 합니다(출처: IUCN Red List).
밤이 되면 하마는 무리를 떠나 혼자 초원으로 나가 약 5km를 돌아다니며 풀을 뜯습니다. 하루에 약 40kg의 먹이를 섭취하는데, 이는 1.8~2.7톤의 체중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양입니다. 소화 기관이 효율적으로 영양을 흡수하기 때문에 이 정도 섭취량으로도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코끼리는 하루에 16~20시간 동안 약 170kg의 먹이를 섭취해야 합니다. 같은 강가에 살지만 두 동물의 생존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는 게, 저는 직접 비교해서 보기 전까지는 실감이 잘 안 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하마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A. 많은 분들이 사자나 악어를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데, 실제로는 하마가 아프리카에서 인명 피해를 가장 많이 내는 대형 포유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분한 하마는 시속 30km로 달릴 수 있고, 2.7톤의 체중과 50cm에 달하는 송곳니로 매우 강한 공격력을 발휘합니다. 겉으로 조용해 보인다고 해서 순한 동물이라는 선입견은 위험한 착각일 수 있습니다.
Q. 하마와 고래가 친척이라는 게 진짜인가요?
A. 네, 유전자 분석 결과 하마의 가장 가까운 현존 친척은 고래류인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하마는 돼지와 가깝다고 알려졌지만, 이건 외모에서 비롯된 오해였습니다. 둘 다 몸에 털이 거의 없고 물속에서 초음파를 이용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사실이 가장 많은 분들이 "설마?" 하고 반응하는 정보입니다.
Q. 하마는 건기에 어떻게 물 부족을 견디나요?
A. 하마는 건기 동안 물이 남아 있는 수원지에 밀집해 하루 종일 물속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피부가 햇볕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물 밖에서의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전략입니다. 먹이가 극도로 부족해지면 다른 하마의 배설물을 재섭취하기도 하는데, 이건 절박한 환경에서 나온 생존 적응이지 비위생적 행동이라기보다는 생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Q. 소등쪼기새는 하마에게 도움이 되나요, 해가 되나요?
A. 일반적으로 소등쪼기새는 하마에게 이로운 청소부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양면이 있습니다. 진드기·이·귀지 제거에는 확실히 도움을 주지만, 하마의 상처 부위를 반복해서 쪼아 상처 회복을 방해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상리공생과 기생의 경계 어딘가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더 정확합니다.
결론
하마를 다시 보게 된 건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물속에서 여유롭게 떠 있는 이미지 뒤에는 텃세권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싸움,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의 본능, 그리고 건기라는 극한 환경을 버티는 정교한 생존 전략이 있었습니다. 자연에는 착한 동물과 나쁜 동물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자기 방식대로 살아남으려는 존재들만 있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다큐가 사냥과 죽음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이 생태계의 실제 모습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하마라는 동물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과 루앙와 강을 배경으로 한 야생 다큐멘터리를 직접 찾아보시는 걸 권합니다. 보고 나면 강가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