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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을 보호하자는 말은 쉽습니다. 그런데 그 동물 때문에 어젯밤 양을 잃은 사람에게도 그 말이 통할까요. 히말라야 오지를 다룬 영상을 보다가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눈표범 보호와 주민 생계라는 두 가지 현실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곳, 그 안에서 사람들이 찾아낸 방법이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었습니다.

    히말라야 사진
    히말라야 사진

    눈표범이 사는 곳, 사람도 산다

    히말라야 깊숙이 자리한 돌포 지역은 북쪽으로 티베트 고원, 남동쪽으로 다울라기리 산맥에 가로막혀 외부와의 접근이 극도로 어렵습니다. 이런 지형적 고립이 역설적으로 눈표범의 마지막 서식지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눈표범(학명 Panthera uncia)은 해발 4,000m에서 6,000m 사이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대형 고양잇과 동물입니다. 여기서 서식지(Habitat)란 특정 생물이 먹이를 구하고 번식하며 생존을 유지하는 물리적 환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눈표범은 행동반경이 워낙 넓어 같은 장소를 다시 지나는 데만 일주일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라다크의 헤미스 국립공원은 인도 최대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이 일대가 눈표범의 핵심 서식지로 꼽힙니다. 실제로 룸방 마을 주민들은 지난 초겨울에만 눈표범의 습격으로 가축 40마리 가까이를 잃었다고 합니다. 저도 예전에 시골 산간 마을에 업무 차 방문한 적이 있는데, 가축 한 마리 한 마리가 그 집 살림과 직결된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양 한 마리 잃는 게 도시 사람 눈에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가족에게는 한 달 생계가 흔들리는 일일 수 있습니다.

    눈표범을 신성시 여기는 분들도 있고, 실제로 티베트 불교 전설에서는 위대한 승려가 눈표범으로 환생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가축을 잃는 주민 입장에서는 신성함보다 두려움이 먼저입니다. 이 두 시선 사이 어딘가에 현실적인 해법이 있어야 합니다.

    보호냐 생존이냐, 양쪽 다 맞는 말

    자연보호를 이야기할 때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동물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명제가 워낙 당연하게 느껴져서, 그 보호를 가장 가까이서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놓치게 되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솔직히 찜찜함을 느꼈습니다.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생물다양성이란 특정 지역에 얼마나 다양한 생물종이 공존하느냐를 나타내는 지표로, 생태계 안정성의 핵심 척도입니다. 눈표범은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는 최상위 포식자로서 이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눈표범이 사라지면 푸른 양이나 아이벡스 같은 초식동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 결과 고산 식생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생태학자들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생태계 유지의 당위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어젯밤 가축을 잃은 주민에게는 추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눈표범을 취약종(Vulnerable Species)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취약종이란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하지는 않았지만 개체 수 감소 추세가 뚜렷해 보호 조치 없이는 멸종 위협이 커지는 종을 뜻합니다. 전 세계에 약 4,000~6,500마리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추산됩니다(출처: IUCN Red List).

    히말라야의 오지 주민들에게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눈표범을 몰래 사냥하는 주민이 생겨난 건 잔인해서가 아니라,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연 보호를 말하려면 이 구조적 압박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히말라야 주민들이 처한 현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해발 4,0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농업은 극히 제한적이고 목축이 주된 생계 수단
    • 눈표범 한 차례 습격으로 한 마을이 겨울 동안 수십 마리의 가축을 잃기도 함
    • 국가 보상 체계나 보험 제도가 사실상 없어 피해를 고스란히 주민이 부담
    • 도시로의 이주도 어려워 자구책이 절실한 상황

    홈스테이가 바꾼 눈표범의 의미

    생물학자 로드니 잭슨이 설립한 눈표범 보호 재단(Snow Leopard Trust)의 접근 방식은 이 문제를 다르게 풀었습니다. 눈표범을 보호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에게 실질적인 수입을 만들어주는 구조를 설계한 겁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이 구조 자체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홈스테이(Homestay) 생태관광 방식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홈스테이 생태관광이란 관광객이 지역 주민의 집에 머물며 체험 비용을 지불하고, 그 수익이 지역 보전 기금으로 쓰이는 구조를 말합니다. 룸방 마을은 이 방식 덕분에 해마다 눈표범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늘고, 홈스테이 수입이 마을의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눈표범이 존재하기 때문에 관광객이 오고, 관광객이 오기 때문에 주민이 눈표범을 지키게 되는 선순환 구조입니다.

    이 사례는 보존생물학(Conservation Biology) 분야에서 지역사회 기반 보전(Community-Based Conservation)의 성공 모델로 자주 인용됩니다. 지역사회 기반 보전이란 보호구역을 외부에서 강제로 관리하는 방식 대신, 지역 주민을 보전의 주체로 세우는 전략입니다. 외부 기관이 "지켜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주민 스스로 지킬 이유를 갖게 하는 것이 훨씬 지속 가능하다는 게 이 분야의 일관된 결론입니다(출처: Snow Leopard Trust).

    저 같은 경우, 처음에는 홈스테이 방식이 좀 상업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신성한 자연을 관광 상품으로 만든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생각을 바꿨습니다. 오히려 주민이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없는 보호 방식은 결국 외부의 강요이고, 그건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눈표범 때문에 먹고살 수 있다는 경험이 쌓여야 진짜 공존이 가능해진다고 봅니다.

    히말라야를 낭만으로만 보면 놓치는 것들

    히말라야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 장면들에 압도됩니다. 해발 5,400m 고개를 넘는 사람들, 눈밭 속에서도 피어나는 야생화, 사원 벽에 그려진 눈표범 그림. 분명히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야사군부(冬蟲夏草)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야사군부란 나방의 애벌레에 버섯균이 기생하여 자란 것으로, 우리나라의 동충하초와 유사한 고산지대 약재입니다. 히말라야 고지대 주민들이 연중 단 한 번, 눈 녹는 시기에 목숨을 걸고 채집합니다. 아이들까지 동원되는 이유는 눈이 좋아 잘 찾기 때문이고, 도시 노동자 하루 일당보다 비싸게 팔리기 때문입니다. 눈보라와 눈사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게, 그 땅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를 말해줍니다.

    티베트 불교의 롱다(Lungta)나 초르텐(Chorten) 같은 종교적 상징물들이 히말라야 곳곳에 가득합니다. 롱다는 바람에 펄럭이는 기도 깃발이고, 초르텐은 불탑 형태의 불교 성물입니다. 이 신앙이 자연보호로도 이어진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부탄처럼 전 국토의 70% 이상이 숲으로 덮인 나라가 가능한 것도 종교적 생명 존중 사상이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오지의 삶을 지나치게 신성화하거나 낭만으로만 소비하는 시선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히말라야 사람들의 삶에는 경건함이 있지만, 동시에 추위와 가난과 노동과 위험이 함께 있습니다. 노인과 아이들만 마을을 지키는 이유는 젊은이들이 다 일하러 나갔기 때문이고,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말하려면 아름다운 장면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무게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히말라야를 한참 들여다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결국 공존이란 감동적인 철학이기 이전에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표범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주민 수입을 늘리는 것이라는 역설, 저는 이게 오히려 진짜 해법에 가깝다고 봅니다. 히말라야의 자연이 궁금하다면, 그 아름다움 뒤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까지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그것까지 봐야 히말라야를 제대로 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yX5npdWV5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