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를 먹을 때 접시 위에 올라오는 그 물렁한 다리가 문어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에서 문어가 먹잇감의 이동 경로를 미리 예측해 기다리는 장면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5억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남은 동물이 단순할 리 없었는데, 직접 영상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전략적 포식자: 기다릴 줄 아는 사냥꾼문어가 사냥하는 영상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본능인가, 아니면 계획인가"였습니다. 먹잇감이 지나갈 길목을 미리 잡고 기다리는 모습은 저 혼자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고,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도 모두 "문어가 이렇게 똑똑한 줄 몰랐다"는 말을 똑같이 했습니다.문어는 무척추동물 중 가장 발달한 신경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
처음 미어캣을 봤을 때 그냥 귀엽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직립보행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귀여운 캐릭터 같았죠. 그런데 칼라하리 사막에서 태어난 새끼 미어캣 스위프트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귀여움 뒤에 이렇게 치열한 삶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새끼가 두 달을 버틸 확률이 50%라는 말야생에서 막 태어난 미어캣 새끼가 생후 두 달을 넘길 가능성은 약 50%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평년의 이야기이고, 비가 내리지 않는 극건조 시기에는 먹이 자원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생존율은 더 낮아집니다. 칼라하리 사막의 강수량 부족은 유충과 애벌레가 땅 깊이 숨어버리게 만들고, 미어캣 무리 전체가 평소보다 훨씬 넓은 구역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스위프트는 태어난 지 5..
활화산 바로 옆에 인구 10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마지막 폭발 때 용암이 도시를 세 동강 냈던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짓고. 니라공고산 다큐멘터리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한동안 멍해졌습니다.경고 시스템이 없으면 몇 시간도 못 버팁니다2002년 니라공고산이 폭발했을 때 용암은 공식 기록 기준 시속 40km로 흘러내렸습니다. 고마시까지 11km 거리를 감안하면 경고 없이는 채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도시가 위협받는 셈입니다. 저는 이 수치를 보는 순간 몇 년 전 강원도 산불 뉴스를 밤새 지켜봤던 기억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당시 "설마 저렇게까지 번지겠어" 했는데, 바람 방향 하나에 마을 전체가 순식간에 위협받는 걸 보면서 자연 앞의 무력함을 실감했죠. 니라공고산 앞에 선 고..
수사자의 평균 재위 기간은 고작 2년 남짓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왕 중의 왕이라는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으니까요. 사자와 하이에나 중 누가 더 강한가라는 질문보다, 어떤 구조가 더 오래 살아남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들었습니다.사바나 생태계, 두 동물의 서로 다른 판사자를 '동물의 왕'으로 부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표현이 절반쯤은 인간의 감정이 투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마사이마라 국립 보호구역처럼 실제 사바나 생태계에서는 위엄보다 적응력이 생존을 결정합니다. 사자 무리는 화강암 바위산처럼 새끼가 숨기 좋고 주변에 물웅덩이가 있는 거점을 중심으로 세력권, 즉 텃세권(territory)을 유지합니다. 여기서 텃세권이란 먹이와 번식 자원을 독점적으로 활..
범고래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라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적 TV에서 범고래가 새끼 고래를 조직적으로 공격하는 장면을 보고 한동안 그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최근 범고래 연구들을 접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를 절감했습니다.무리마다 다른 말을 쓴다 — 범고래의 방언범고래가 무리마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고래 소리려니 했는데, 알고 보니 북쪽 무리와 남쪽 무리의 음파 스펙트럼을 비교하면 서로 확연히 다른 패턴이 나온다고 합니다.여기서 음파 스펙트럼이란 소리를 주파수별로 분해해 시각화한 그래프로, 쉽게 말해 소리의 '지문' 같은 것입니다..
몽골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아마 대부분 기마병과 칭기즈칸, 그리고 불태우며 지나간 정복 전쟁일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세계사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몽골은 '파괴하고 쓸어버린 제국' 정도로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쿠빌라이의 통치 방식을 들여다보니, 그 이미지가 상당 부분 빗나갔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쿠빌라이가 그린 세계관, 지도 한 장에 담긴 야망2003년 일본 시마바라의 한 사찰에서 가로 2.8m, 세로 2.2m짜리 지도 한 장이 공개되었습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라는 이름의 이 지도는, 유라시아 전 대륙은 물론 역사상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윤곽이 담긴 세계 지도입니다. 교토대학 주관 아래 중국,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역사·지리학 전문가 ..